정혜신

‘김대중 죽이기’의 서평을 쓰느라 책을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아직 우리 언론은 정치인들의 평가에 정신분석학을 도입하지는 않고 있다. 아니 다행이라고 볼 일은 아니다. 우리 언론은 정치보도에 있어서 아예 정신분석학의 흉내도 내지 않으면서 추리소설을 쓰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니 말이다. 특히 김대중에 관한 보도가 그러하다. (김대중 죽이기, 강준만, 개마고원, 1995)

강준만 씨가 아이디어를 줬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불행히도 (?) 정혜신 씨는 정치인들의 평가에 정신분석학을 도입했다. 생각난 김에 정혜신 씨에 대한 얘기를 약간 해보자.

정신분석학은 ‘환자는 항상 옳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의식 수준에서는 엉뚱하고 비논리적인 환자의 말이나 행동들도 무의식 수준에서는 그 사람의 핵심동기를 드러내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나타난 말만으로 헛소리라고 무가치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말하는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시장에서 말하는 고객만족은 지극히 의식적 수준의 개념인데 반해 정신분석학은 철저하게 대상의 무의식 차원에 주목한다. 의도를 가진 특정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명징한 의식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봐야 하지만 민심이란 본질적으로 민중의 무의식이 투사된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민심은 언제나 옳다, 고 나는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으로 본 노 대통령, 정혜신, 한겨레)

정신분석학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환자는 항상 옳다’는 명제가 옳다고 가정해보자. 환자의 무의식이 드러낸다는 핵심동기는 언제나 헛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이 정신분석학자의 일일테다. 민심에 대한 정혜신 씨의 정치철학도 옳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헛소리로 들리는 민심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위의 얘기도 어디까지나 너그럽게 모든 것이 옳다는 가정 아래서의 얘기다. 정혜신 씨가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뭔가? 민심은 (말그대로) 옳으므로 대통령은 이를 따라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정치철학이자 정치적 의견이다. 특히나, 연정을 둘러싼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일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펼치는데 정혜신 씨의 정신분석학은, 의식과 무의식 운운은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그가 동원한 정신분석학은 얼마나 과학적 정합성을 가지고 적용되었는가? 그것은 적합한가?

정혜신 씨의 정치적 의견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정신분석학 운운은 봐줄 수가 없다. 일종의 ‘지적 사기’다.

Update: 이상한 모자님의 한겨레의 정신분석학도 읽어보자.

이 경우의 ‘정신분석학으로 본’ 이란 수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적 경향에 대해 ‘개인적’ 조언을 하겠다는 알리바이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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