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2014)

우연히 한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보게 된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는 편하게 볼 수 있는 보통의 영화지만, 개인적으로는 와닿는 면이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인 칼 캐스퍼가 셰프로 있는 레스토랑에 유명한 요리비평가가 찾아오기로 합니다. “예술가가 되는 건 네 시간에나 해. 여긴 내 레스토랑이야.”라는 레스토랑의 주인에 맞서보지만, 결국 새로운 요리 대신 인기 요리를 만들게 되고 그 때문인지 요리비평가가 다녀간 후에 최악의 평이 실리게 됩니다. 더 나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다시 한번 요리비평가에게 도전을 하지만, 요리비평가가 찾아오는 날 칼 캐스퍼는 주인과 맞서다 레스토랑을 나오게 됩니다. 실직 후 고생을 하다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 끝에 푸드트럭을 통해서 성공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내용 자체는 가벼운 편입니다. 전반부는 유머를 잃지않으면서도 진지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꽤나 흥미로왔는데, 후반부는 이러한 사건의 실타래가 풀리는 과정들이 흥미롭다기 보다는 그저 사건들이 흘러가는 형태인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우선 레스토랑 주인은 예술적인 요리나 이를 통한 개인의 명성보다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는 요리와 이를 찾아주는 고객들을 우선시 합니다. 레스토랑 주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모든 것을 투자하고 고용한 사람들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다루고 싶어하는 것에 크게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칼 캐스퍼는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어느 정도의 명성도 있고 주방에서의 리더 – 셰프로서의 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우연히 더욱 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이를 통해 명성을 얻고 싶어합니다. 요리비평가의 악평이 실린 후 전아내나 레스토랑의 매니저인 몰리는 고집 센 레스토랑 주인 아래에서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요리하기 보다는 푸드트럭을 시도해볼 것을 제안하지만, 칼 캐스퍼는 (아마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자존심 때문에 이를 거절합니다.

푸드트럭을 시작한 후에 칼 캐스퍼는 두가지의 행복을 찾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요리를 자신의 요리를 즐겁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항상 ‘나중’으로 미뤄놨던 아들과 약속한 여행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것.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칼 캐스퍼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인생이 항상 이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겠죠. 푸드트럭을 한다고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모두가 나가서 푸드트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무시하고 계속 일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Michael Clayton

마이클 클레이튼(Michael Clayton)의 이야기 자체는 별 볼일이 없다. 사건이 굉장히 급박하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회상 형식의 플롯도 그다지 마음에 안든다. 이 영화의 스릴러물로서의 몰입도는 캐릭터의 내면적인 갈등, 그리고 캐릭터 간의 긴장감있는 대화 장면들에서 오는 것 같다.

U/North의 법무팀장인 카렌 크로더는, 마이클 클레이튼(또는 아서 이든스)의 적인 동시에, 어느 쪽도 회사나 개인의 이익과 진실 혹은 정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는 면에서 동일한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두 캐릭터 간의 차이점은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삼성 특검과 같은 상황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도 똑같은 갈등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영화에서와 같이 진실의 은폐나 도덕적인 부패가 과연 개인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질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유령신부 Tim Burton's Corpse Bride



Corpse Bride, originally uploaded by Joseph Jang.

“유령”신부는 Corpse Bride의 무난한 번역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시체나 해골 캐릭터들이 돌아다니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약간의 혼란을 느끼게된다. “시체”신부라는 어감과는 다르게, 달빛 아래에서 우아하게 걷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체”의 세계의 것은 아니었다.

빅터의 결혼식을 알리는 도입부에서 그려지는 지상 세계는 단조롭고 칙칙한 모습인 반면에, 유령신부(이름을 알게되는게 상당히 뒤쪽이어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건 의도적인 걸까?)가 살아있을 때의 과거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에서 보이는 지하세계의 모습은 활기가 넘치고 화려한 모습이다. 각각의 세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을 제외한 지상 세계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 종교를 중요시 하는 캐릭터들임에 반해서, 지하 세계의 캐릭터들은 쾌활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다. 빅터가 빅토리아를 포기하고 유령신부와 결혼할 것을 약속하는 대목에서도 관객들은 (적어도 나는) 그것에 커다란 이의를 달지 않을 만큼이나 지하 세계는 지상 세계에 비해서 오히려 매력적이다. 마치, 팀 버튼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몽땅 “지하 세계”라는 기호에 대입시켜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대니 엘프먼의 음악도 마음에 들었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유령신부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메인 테마를 연주하는 빅터의 피아노 솔로나, 빅터와 유령신부가 함께하는 피아노 듀엣도 참 마음에 들었다. 피아노 듀엣을 마친 후에, 유령신부가 “Pardon my enthusiasm.”이라고 하는 걸 들으면서 유령신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그러고보면, 난 enthusiastic한 여자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여자를 만났을 때 단조롭고 열정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물론, 내 판단 하에서) 어떤 감정도 싹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스토리는 비교적 무난한 편이다. 결혼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이기도 할 것 같고, 그냥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에도 잘 맞아 떨어지는 그런 평이한 이야기인 것 같다. 왜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는 것 있지 않나. 주인공이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좌절되고, 방해자와 조력자가 나타나고, 주인공은 갈등하고 고통받고, 마침내 마지막 장애물을 넘어서고 목표를 달성하는 이야기.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웃기려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재치있는 대사를 가끔씩 던져주는 스타일이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영화관에 가는 목적 중 하나인 “같이 웃기”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어서 약간 아쉬웠다.

이 영화를 본 곳은 대전 프리머스 4관이었는데, 음악이 고조될 때 약간 귀가 아플 정도였다. 단순히 음량이 큰 이유만도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뭔가 이상했다. 재미있게 본 영화, 특히 음악이 좋은 영화는 크레딧을 봐주고 나오는게 일반적인데, 저번에 스타식스 타임월드에서 나가란 소리 들은
이후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 대전에서 영화볼 때는 크레딧 지키기에 상당히 소심해졌다. 그래서, 적당히 사람들이 모두 나간 후에, 옆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나와버렸다.

친절한 금자씨

복수 삼부작의 완결편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를 본 사람이라면 복수 삼부작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해보는 건 당연하다. 알다시피 친절한 금자씨는 그 삼부작의 완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세개의 작품을 늘어놓고 보면, 얘기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스펙트럼이 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이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적인 이야기 방식이었다면, "올드 보이"로 오면 이미지와 상징을 통한 이야기를 한다. "친절한 금자씨"는 한층 더 강렬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상징을 표현하려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이미지들이 많이 등장하다보니 전작들보다 좀 더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

전작들을 본 사람들이라면, 전작들에 출연한 배우와 대사를 알아보는 것도 작은 재미.

박찬욱은 최고의 감독?

대사, 의상, 화면 구성, 음악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최고였다. 한국에 이만한 감각을 가진 감독이 몇이나 있을까.

심각한 분위기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박찬욱 감독의 단골 기법은 너무 능수능란해서 식상할 정도였다.

완벽한 복수자 캐릭터 금자씨

13년 동안의 복수 계획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다. 이러한 과정 자체를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겠지만, 아무래도 복수의 절정은 그야말로 복수의 대상을 극한의 고통에 빠뜨리는 그 순간이다. 금자씨의 복수는? 역시 완벽하다. 금자씨가 직접 백 선생에게 주는 물리적인 고통은 극히 일부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백 선생은 극한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복수자 아닌가.

하지만, 플롯상에서 금자씨의 복수 계획은 너무 일찍 노출되고, 복수의 형태 자체가 그렇게 참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수의 세세한 표현이 크게 충격적이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긴 시간을 할당한 것은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전작들에서의 고어한 표현들에 대한 관객들의 비판들이 박찬욱 감독에게도 영향을 미친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이영애

영화가 시작했을 때만해도 과연 이영애가 복수자의 캐릭터로 어울릴까 약간 의심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볼 수록 나긋나긋하고 조근조근한 목소리에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얼굴을 가진 이영애가 아니었다면 과연 누가 저 역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란색 죄수복의 이영애, 물방울 무늬의 원피스와 썬글래스 차림의 이영애, 잠옷 차림의 이영애, 가죽 코트 차림과 붉은색 아이섀도우의 이영애 모두 예뻤다. 그녀는 너무 예뻐서, 화면 한 구석에 이영애가 서 있기만 해도 화면 전체가 예뻐 보일 지경이었다.

복수에 관하여? 인간 군상에 관하여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영화는 백 선생(최민식 분)은 어느 누구도 감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란 것을 보여준다. (식탁에서의 섹스 장면은 억지스러울 정도?) 이것은 금자씨가 무슨 형태로 복수를 하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보장해준다. 물론, 죄책감의 주체는 관객이다. 박찬욱 감독은 우리들을 양심의 우리에서 풀어준 후에, 자 어떻게 할꺼냐 하고 물어본달까. 금자씨로부터 복수를 의뢰받은(?) 평범한 모습의 부모들은 어쩌면 관객들 자신을 대입시키기 좋으라고 등장시킨 분들 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막을 내릴 즈음 눈이 오는 장면에서, 제니는 입을 벌리면서 하얀색 (두부 모양의) 케익을 먹고 하얗게 된 혀를 보여준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근식이 보통의 혀를 보여준다. 피로 만든(?) 케익을 먹은 금자씨는 당연히 붉게 물든 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은가 싶더니,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그녀의 혀를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 같은 색깔의 혀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그렇게 여러가지 색깔의 혀를 가진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때로 그 중에는 자신의 혀를 내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우주 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소설 원작의 영화화

아마, 순전히 어린이용으로 쓰여진 것 외에 내가 처음으로 읽은 SF가 바로 우주 전쟁일 것이다. 아마 어린이용 전집의 첫번째 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접한(그랬다고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SF였던 것 같고, 꽤나 좋아해서 방학 때마다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문어 모양의 거대한 기계는 내 꿈의 주요 소재였다. 그 기계가 서치라이트를 이리 저리 밝히고, 굉음을 내고 걸어다니는 동안, 나는 다리 밑에 숨어있는 내용의 꿈. 난 그 꿈을 자주 꾸었고 즐겼었다. 지금과 같이 극장의 스크린이 나를 대신하여 꿈을 꾸어줄 수 없었던 시절에 말이다.

Half-Life 2가 출시되기 전에 그것에 열광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무래도 인간 저항군을 학살하는 삼발이 기계와 싸울 수 있다는 것 – 내 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등장한 삼발이(Tripod)는 물론 소설의 표지에 나왔단 거랑 모양이 너무 달랐고 두려움의 정도는 기대보다는 덜한 정도였다. 하지만, 삼발이 앞에서의 무력함은 똑같았다. 부두 하역 노동자에 불과한 평범한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자신과 자신의 딸 정도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 무력함의 쾌감이란. (그런 면에서 삼발이 파괴 장면은 오버.)

허무한 결말?

초등학교 이후로는 우주 전쟁을 읽을 일이 없었지만, 내용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결말도 이미 알고있던 터라 내겐 이미 반전도 아니었고, 다코타 패닝양이 처음에 아버지랑 대화하면서 복선을 깔아주는 것도 즐길 수 있었다. 사람들의 결말 논쟁을 보면 대체로 원작에서도 그랬으니 별 문제 없다와 원작과 상관없이 너무 허무하다로 나뉘어진다. SF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종류의 결말은 흔하다. 뭔가를 더이상 제어할 수 없어지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말거나 이고. 그 극복은 인간의 능력보다는 우연성이 개입할 때가 있다. 물론 우연이라고 해도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또 SF의 특성이지만. 영화를 볼 때가 아니라, 원작을 볼 때도 결말에 별다른 이의를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스필버그

스필버그의 공식은 간단해서 좋다. 해체된 가족의 회복. 회복하고 나서는 상처도 없이 말끔하다. 일종의 판타지. 판타지 속의 판타지라.

이미지

수많은 삼발이가 인간을 학살하는 장면과 삼발이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무너지는 광경은 꽤 멋있었다. 피바다도 괜찮았고. 그런 이미지들을 감상하기 위해서 한번 더 보고싶다.

배트맨 비긴즈 Batman Begins (2005)

영웅의 성장기

스파이더맨처럼 배트맨 비긴즈도 영웅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다. 스파이더맨은 영화 내에서 힘을 가지고도 개인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성격(A)으로부터 그 힘을 공공을 위해 봉사하는 성격(B)으로 변화한다. 무려 여자친구도 버리고 말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한 이러한 성격의 변화가 바로 스파이더맨에 나타나는 성장 플롯의 일부다. 스파이더맨 복장이나 여자친구와의 관계같은 부수적인 변화는 아무래도 좋다. 정신적인 면에서의 성장은 A->B의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성장 플롯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영웅들의 본 스토리는 아무래도 선악의 대결 구도이지 않는가. 사실, 스파이더맨의 성공은 이런 선악 대결 구도에 지루해하기 시작한 관객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배트맨 비긴즈도 스파이더맨을 본받아 성장 얘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그런데 문제는 배트맨 비긴즈가 좀 멀리 갔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어린 배트맨 – 브루스 웨인은 부모님의 피살 당시 무력함에 죄의식을 가진다(A). 청년 브루스 웨인은 모든 범죄자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복수를 시도한다(B). 고담 시티의 갱 두목 팔코니를 찾아갔다가 ‘넌 우리 세계를 몰라’하고 핀잔을 받은 웨인은 범죄자 집단으로 숨어들어서 그들의 생리를 배운다(C). 듀커드(리암 니슨)와 라스 알굴을 만난 웨인은 무술과 함께 범죄자에 대한 그들의 생각 또한 전수받는다(D). (듀커드의 대사를 듣고 이것들이 이제 대놓고 맛가는구나하고 생각했었다. 헐리우드의 기본 사상을 잠시 망각했었던 것.) 하지만, 웨인은 무술들만 쏙 배우고 나서는 그들의 생각을 거부하고 고담시티를 구하기 위한 영웅으로 귀환한다(E). 이 후는? 스파이더맨과 똑같다.

배트맨의 성격은 A->B->C->D->E의 복잡한 변화를 거친다.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다. 배트맨 비긴즈가 다른 영웅 성장기와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과연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을 정도니까. 이유는? 물론 관객들은 복잡한 걸 싫어하니까.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관객들의 수준이 좀 높아졌다는 걸 의미하는걸까? 아니면 제작사를 설득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역량인가?

배트맨은 아메리칸 닌자

역시 미국인들에게 ‘동양’의 국적은 죄다 일본인가보다. 티벳 고원(?)을 배경으로한 닌자 훈련이라. 원래부터 배트맨은 표창과 줄타기 등의 닌자 기술을 사용하는 영웅이긴 하다. 라스 알굴 일당이 국제 조직이다보니 무술이나 언어, 본거지도 국제화되어 있다고 억지로 봐주는 것도 가능하긴 할 것 같다.

리암 니슨이 듀커드로 나올 때는 “음, 제다이 마스터가 여기에. 그럼 배트맨은 마스터를 배신하고 다크 사이드에 넘어간 파다완?”이라고 생각했다. 제다이도 역시 사무라이와 도제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리암 니슨을 배트맨의 스승으로 캐스팅한 것은 묘한 어울림이 있다.

크리스찬 베일

크리스찬 베일은 역대 배트맨 중 가장 예쁜 배트맨이다. 여피의 이미지가 재산가 브루스 웨인이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수없이 갈등을 하는 캐릭터에도 예쁜 남자가 어울린다. (예쁜 것에 모든 합리화의 초점을.) 처음으로 크리스찬 베일을 영화를 통해서 본 것은 아메리칸 싸이코였다. 손도끼를 든 여피족. 섹스를 하는 자신의 몸을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그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퀄리브리움은 개인적으로 좀 별로였고. 머시니스트도 괜찮다고 하던데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

연애의 목적 (2005)

연애의 목적

연애의 목적은? 신문 가판대를 지나치며 보듯 인터넷에서 슬쩍 컨닝한 정답은, 연애의 목적이란 것은 바로 연애다. 하지만, 작가나 감독의 의도가 어쨌든 간에 나로서는 영화만 보고서 연애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파악이 되질 않는다. 그저 유림(박해일)과 홍(강혜정)의 캐릭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불성실한 관객이랄까. 유물론자인 내가 생각하는 연애의 목적이란 연애에 참여하는 인간들이 서로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익 때문이다. 물론 그 이익이란 당사자들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사회적/정서적/경제적/성적 이익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또 여러가지가 될 수도 있다. (결혼에 관한 나의 글을 참고해보라.) 연애의 목적이 연애란 것도 선천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연애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선천적/구조적 경향을 유도한 원인이 되는 어떤 이익으로 환원해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함 vs. 의뭉스러움

유림이라는 캐릭터의 최대 매력은 아무래도 섹스라는 연애의 목적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한 10년 전쯤에 비해서야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도 섹스라는 단어를 꺼림찍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유림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유림이 솔직함의 극단이라면, 홍은 그 반대다. 홍은 계속 유림의 요구를 거절하면서도 슬쩍슬쩍 들어주는 의뭉스러움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표현은 마지막 그 순간까지 미룬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가장 이상적인 연애의 관계가 이런 관계가 아닐까 싶다. 솔직한 두 사람의 연애는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고, 의뭉스러운 두 사람의 연애는 아예 제대로 시작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솔직함 또는 의뭉스러움만으로 연애라는 관계가 지속되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 연애는 신뢰게임이다. 연애가 지속되어서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된다면? 왜, 그래서 사랑의 무덤이 바로 결혼이 아니겠는가.

여자의 "No"는 "Yes"?

요즘 세상에 좀 아는 체 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얘길 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핀잔을 받게 마련이겠지만, 이 영화는 당당하게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정녕 남성들의 판타지가 아니었단 말인가. 남성 감독의 필터링을 당하긴 했지만, 여성 작가의 작품이란 점에서 그렇게 보기는 좀 힘들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연애에 가장 능통한 친구 녀석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연애는 항상 "case-by-case"라고. 마음에 드는 남정네가 여관가자고 하면 여자의 No도 Yes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눈 맞으면 뭔 짓을 못하겠는가.

솔직히 수학여행 때 섹스 장면은 멋도 모르는 관객이 보기엔 완전히 강간이었다. 단, 이어지는 홍의 친절한 고백이 없었다면 말이다. 물론, 유림은 분명히 홍이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것을 어떤 감각으로 느꼈을 것이다. 관객은 다만 감독에 의해서 그러한 감각이 차단당했을 뿐. 아니면, 감독에 비해 관객들이 둔감한거라거나.

복수는 나의 것, 새로운 희망

연애의 목적은 그 관계가 주는 이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익의 경쟁력이 사라지면 바로 그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홍은 그러한 케이스의 전형적인 희생자였고, 영화의 시간대에서는 다시 유림이 그 희생자가 된다. 신기하게도 남자가 그런 순애보의 희생물이 되는 상황이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것이 내게는 상당히 낯설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순애보의 희생물로 당해온 여자들의 복수극이라고 보면 오버일까. 두차례의 복수극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그리고 이제는 달라진 두 사람의 관계 위에서, 연애는 다시 시작된다.

Star Wars Episode 3: Revenge of the Sith

스타워즈와 같은 흥행예상작들을 개봉일 근처에 보기는 힘들다. 금방 매진이 되어버리고, 설령 표를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리가 그다지 좋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나는 좋은 표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실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런 영화들은 개봉 후 2-3주 후에나 보는 편이다. 그래서 난 개봉일을 가상적으로 늦출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시간 왜곡 드라이브를 가동중이엇는데, 마침 여자 친구에게 열받은 친구 녀석이 보여준다고 해서 좋다거니 따라나섰다. 대전 CGV 5관이었고, 지난 목요일 심야 23시 30분 프로였는데도,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자리는 역시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구의 성의를 무시하고 나와버릴 만큼 나쁜 것도 아니어서 다음번에 한번 더 보면 되겠거니 하고 참고 봤다.

스타워즈 팬은 아니더라도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불리기도 싫다), 어느 정도 스타워즈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는 편이기 때문에, 3편의 스토리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3편에서 기대한 것은, (2편에서 이미 예고한) 우주에서의 함대 전투, 사건의 세부적인 전개 상황과, 다쓰 베이더의 탄생 장면이었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것은 분리주의자들과 공화국의 우주 함대전이다. 기본적으로는 오비완과 아나킨의 침투 장면이지만, 그 배경을 장식하는 함대전은 그야말로 시리즈 중 최고의 비주얼을 선보였다. 다시 한번 스타워즈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비주얼에 집중해서 봐야할 듯하다.

한편, 제다이 원탁 회의에서 염려하고 있었듯이, 아나킨은 팰퍼틴 의장에 의해 다크 사이드의 유혹을 지속적으로 조금씩 받고 있었고, 거기에 파드메의 죽음에 대한 예견이 더해져 자신의 선택에 대해 조금씩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아나킨의 변절 장면에서도 아나킨은 어느 쪽을 결정했다기보다는 흔들리고 있는 처지였다. 주어진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아나킨의 결정을 요구했고, 그는 (결과적으로) 윈두를 죽인 후 외친다. "What I’ve done!". 그 한순간의 결정에 따른 상황의 변화가 아나킨의 미래를 지배해버렸다. (마치, 약혼자를 죽일 계획으로 약혼자를 데리고 차를 몰고 있었으나, 아직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도중, 의도치 않은 자동차 사고가 나고 약혼자는 죽어버렸다는 식.) 그 순간에 아나킨은 팰퍼틴을 죽이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자연주의(naturalism)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 하지만, 이 장면에서 아나킨이 몇초 가량 괴로워하다가 바로 팰퍼틴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다만 아나킨이 약삭빨라서인가.

강력한 포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라이트 사이드와 다크 사이드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아나킨의 캐릭터의 설정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설득력있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텐데, 아나킨의 심리를 보여주는 방식에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다쓰 베이더의 탄생 장면은 그야말로 팬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었을테다. 어디서든 다쓰 베이더의 그 숨소리만 들려도 팬들은 즐거워할텐데, 그 첫번째 숨소리라니! 다쓰 베이터의 탄생 장면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이 영화는 바로 다쓰 베이더의 탄생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다쓰 베이터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스토리를 짧은 시간 내에 담으려고 허겁지겁 스토리를 진행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캐릭터들의 진실성이나 매력이 와닿지 않았고, 그것은 캐릭터의 감정이나 심리를 표현하는데 충분한 장면을 할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한 감정이입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몇 장면을 꼽아보자면, 일단 방금 얘기했던대로 아나킨의 변절 장면에서의 아나킨의 급격한 심리 변화는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아나킨과 오비완의 결투 장면에서도, 싸움을 하면서 나눈 몇마디 대화가 아나킨과 오비완의 심정을 포용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비완이 아나킨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도 너무나 허술하지 않은가.) 후일의 영웅이 될 쌍둥이들을 출산하는 파드메의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출력이 모자란 것인지 연기력이 모자란 것인지.

덧붙여, 그리버스라는 캐릭터도 반동 캐릭터로서는 너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전투를 좀 잘하는 드로이드일 뿐 그 이상의 매력은 없었다. C3PO나 R2D2의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라든가 인간이면서도 제다이와 대결이 가능한 장고펫 같은 캐릭터와는 대조적이다.

한 마디로 이번 영화를 평하자면, 친구에게도 얘기했듯이, 비주얼은 역대 최고, 드라마는 역대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