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젯 프린터 수리하기 vs. 새로 사기

약 2년 전에 아이들 사진을 집에서 좋은 품질로 인쇄하려고 잉크젯 프린터를 샀다. 그 전에는 사진을 인쇄하는 용도로는 소형 포토 프린터를 가지고 있었고, 텍스트를 -주로 논문들 – 인쇄하는 용도로는 레이저프린터를 가지고 있어서 수년 동안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마침 토너가 다 떨어진 참이었다.

내가 산 모델은 Canon의 TS8030이라는 모델로 고화질 사진 인쇄, 스캐너, 복사가 가능한 가정용 복합기 개념의 제품이었다. 사진들의 인쇄 품질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신분증 복사 같은 것들은 가족들을 위한 서류 작업 때문에 꽤나 자주 해야하는 일이고, 일이 바쁘게 진행되는 회사에서 시간을 내서 하기에 어렵다보니, 이를 집에서 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에 문서들의 인쇄 품질은 레이저 프린터에 비하면 읽기 싫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종이 품질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잉크가 살짝 퍼지면서 폰트가 조금 뭉개지는데 이게 레이저프린터의 깔끔한 느낌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럭저럭 한 1년 남짓 썼을까 갑자기 인쇄를 하려고 하면 내부에서 딱딱 소리가 나면서 아무것도 프린트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몇번이고 헤드 청소도 하고 내부도 살펴보았지만 원인을 파악하기는 힘들었고, 워낙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니 수리 맡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아내는 사진을 인쇄해서 집안 액자에 넣어 둔다든지 앨범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기에 내게 몇번이고 수리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오늘에야 드디어 생각이 미쳐서 수리를 알아봤더니, 고객이 딱히 포장해두지 않아도 택배를 통해서 포장-회수-수리-반납-대금납입을 해주는 캐논 재팬의 서비스가 있었다. 요금은 3240엔. 어딘가에 신경을 쓰는 것이 내게는 매우 부족한 자원이기에 돈을 들여서라도 신경을 덜 써도 되도록 해주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수리 비용. 보증기간 내에서는 수리 비용이 무료지만, 보증기간이 지나면 수리비용은 일률 14,040엔. 문제는 이 프린터를 구입한 가격이 19,000엔 가량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 구입하는 비용은 TS8130이 14,000엔, TS8230이 28,000엔 정도다. 게다가 TS8130과 TS8230은 디자인이 다를 뿐 기능적으로 큰 차이도 없다. 잉크는 TS8030은 BCI-370/BCI-371 잉크를 사용하지만, TS8130/TS8230은 BCI-380/BCI-381을 사용한다. 과연 얼마나 차이가 날까.

결국은 TS8130을 구입하기로 했다. 논문 등 텍스트 인쇄의 품질은 레이저 프린터가 월등하기에 조금 고민이 되기는 했지만, 아내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마 더 중요하겠지.

한편으로는 개별 수리 건들을 처리해야하는 인적 비용이 제품의 생산단가보다 더 비싸고, 매년 신규 모델을 내놓고 신규 모델에는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거나, 잉크 모델을 바꿔버려서 이익을 보는 신기한 프린터 비즈니스의 세계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Daniel Ek on Focus

최근에 읽은 Spotify의 cofounder이자 CEO인 Daniel Ek의 인터뷰.

https://www.fastcompany.com/90213545/exclusive-spotify-ceo-daniel-ek-on-apple-facebook-netflix-and-the-future-of-music

DK: I’m really organized. I don’t do social calls. For so many people, you’re beholden to this social thing, if I don’t show up, someone is going to be sad. I’m just pretty ruthless in prioritizing. What I tell my friends is, I like to be invited, but I probably won’t come. The transparency helps. This is how I’m wired. It’s not a personal thing. It doesn’t mean that I don’t enjoy your company. It’s just means that I’m focusing on something.

DK: 저는 정말 잘 정리된 사람입니다. 저는 사교적인 모임을 나가지 않습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교적인 것들에 잡혀 살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러한 모임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슬퍼할 거에요. 나는 다만 무자비하게 우선순위화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에요. 친구들에게는, 난 초대 받고 싶긴 하지만 아마도 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렇게 투명하게 얘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게 제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이에요. 그건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당신과의 만남을 즐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단지 나는 지금 다른 뭔가에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적인 모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필요없다고 믿는 미팅이나 심지어 메신저 챗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이유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반드시 집중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Clean Coder에서 로버트 마틴은 자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프로페셔널의 당연한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쓸데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자.

I also write out what my daily, weekly, monthly goals are, and every evening I check how I’m doing. And then I just over allocate my time [to match the goals]. People think that creativity is this free spirit that has no boundaries. No, actually the most creative people in the world schedule their creativity. That’s the irony. So I try to do the same. I just don’t have as many meetings as you think. Instead I have a lot of me time where I’m just thinking; I’m at a white board drawing by myself. Occasionally I might have someone with me. If I have a call or another meeting, I’ll just block it out if I’m in the zone. That’s unorthodox because it means that you’re breaking social contracts, you’re disappointing someone because you didn’t show up. But if you’re really, really focused, those are the times when the breakthroughs come.

그리고 저는 매일, 매주, 매달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기록해두고, 매일 저녁에 내가 얼마나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그리고는 (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시간을 여유롭게 할당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창의성이란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정신이라고들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에요.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창의성을 계획합니다. 그건 역설적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저도 똑같이 하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대신 단지 생각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당합니다. 혼자 화이트보드 그림 앞에 서서요. 가끔 누군가와 함께 하기도 해요. 만일 내가 전화나 다른 회의가 있는데, 내가 매우 집중하고 있는 상태 (in the zone)라면 그것들은 그냥 차단해버릴 겁니다. 그건 당신이 사회적인 계약을 어기고, 당신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례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로, 정말로 집중하고 있다면, 그때가 바로 중대한 돌파구가 만들어질 때입니다.

요즘 들어서 매일 매일 발생하는 사건들과 커뮤니케이션에 묻혀서 정작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단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이 말 들로부터 굉장히 용기와 도움을 얻었다.

어제 1시간 정도 들여서 Yearly/Monthly/Weekly/Daily goal을 세워보았다. 매일 저녁 이를 평가하고 다시 목표를 업데이트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식별된 내 삶의 중요한 목표들에 내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싶다.

가계동향조사 논란에 관한 글을 읽고

“가계동향조사와 통계청장 교체를 둘러싼 논란점 정리”

http://sovidence.tistory.com/968

외부의 시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최근의 가계동향조사에 대한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글. 인구조사라는 전혀 다른 도메인에 관한 얘기라서 흥미로왔다.

몇가지는 교훈으로 남겨볼만한 것 같아서 몇몇 부분을 인용해본다.

하나는, raw 데이터의 고도화된 수집, raw 데이터를 이용한 기술적인 통계, 어떤 의사 결정을 위한 분석은 모두 다른 분야이고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역량도 꽤 다르지만 이 도메인 바깥에 있는 사람들 눈에는 하나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효율을 위해 사회나 조직 분화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지만 때로 불필요한 오해나 잘못된 결정을 낳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a) 통계 원자료 생산과 (b) 생산된 원자료 분석 능력이 같은 건줄 아는 것. 양자는 매우 다름. 대학 교수나 연구원들은 전자의 능력이 별로 없고, 통계청 직원들은 후자에 특화되어 있지 않음. 통계청의 원자료 분석은 대부분 기술 통계임.

데이터를 이용한 의사결정에 대한 강조는 굳이 여기서 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것이 잘 이루어지려면 분석하기 편리한 환경이 중요하다. 순진하게 데이터를 다 퍼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잘 보호하면서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한편, 데이터란 단어 자체가 너무 넓은 의미를 담고 있다보니 그 목적(의 일부)에 해당하는 증거라는 단어가 얘기하고 이해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통계청은 청와대에서 자료를 달라고 해도 정권이 통계 조작할려고 한다고 노조가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미국은 전세계 모든 인민들에게 자신들의 자료를 공개하고 있음. […] 정권이 통계를 조작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정권이 통계 원자료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분석하는 것은 매우 권장해야 할 일임. “증거기반정책” 생산은 통계 분석없이 불가능함. 후자를 했다고 전자를 의심하고 공격하는 건 말이 안됨.

추가논의 1: http://sovidence.tistory.com/969

추가논의 2: http://sovidence.tistory.com/970

추가논의 3: http://sovidence.tistory.com/971

추가논의 4: http://sovidence.tistory.com/972

추가논의 5: http://sovidence.tistory.com/973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First things first)

최근 한달 동안 frustrating things를 지난 주에 적어 본 것이다.

1. 누군가가 찾아오거나 메신저로 물어보거나 메일을 보내온 일들을 처리해주다 보면, 일과 시간 내내 새로이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를 처리하고 있거나,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갔어야 하거나 지금까지 몇번이나 반복되었던 듯 한 누군가의 질문에 답해주거나, 업무의 경과를 공유 또는 보고하는 문서나 메일을 쓰고 있다. 상사로부터 명시적으로 부여받은 소위 ‘본업’에 해당하는 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느새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밤이 되어서야 하게 된다. 또는 밤에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 정작 ‘본업’을 할 시간이 생겨도 실제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 보다는, 그 일을 위한 일 – 이슈를 공유하거나 할 일을 정하기 위한 회의, 도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 빌드 환경의 문제, pull request를 어떻게 할 지 정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는 일 등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다.

이렇게 문제를 정의한 후에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오늘은 본업에만 집중할거야. 그리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내가 쓰고 싶었던 코드를 쓸거야.’라고 되새기지만, 그 전날과 완전히 동일한 하루를 보낸다. 이러한 일상의 문제들을 잘 처리하면서 자신의 ‘본업’도 잘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은 이러한 반복적인 문제의 원인이 내 자신의 습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내향적인 성격의 전형적인 결론)

이처럼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보거나, 느끼고 있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거나,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쉬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누군가는 중요해질지도 모르는 급한 문제들을 살펴봐야 하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질문에 답해주어야 하고, 누군가는 문서를 잘 정리해야 하고, 이슈는 빠르게 공유되어야 하고, 원래 실무를 하는 과정에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좀 더 넓게 바라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중요한 일을 하고 싶다.
– 나의 취향과 호기심, 재미를 충족시켜주는 사람들과 일하고 대화 하고 싶다.
–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일하면서 성장하고 또 그 결과로 인정받고 싶다.
– 나의 행동을 통해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누구나 바랄법한 목록 아닌가 싶지만, 사람들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잠깐씩은 ‘그래, 어쩔 수 없지~’ 하다가도 이 목록을 보다보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변화를 위한 길은 걱정이 되는 강한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반복하는 단순한 운영 업무 대신 ‘이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해보죠’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의 환호성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군가가 열심히 만든 도구를 버리고 내가 쓰기 편한 도구를 쓰자고 한다면 수많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들이 나열될 것이다.일부로 메신저 친구 등록을 하면서 질문을 해왔는데 만약 메일로 다시 보내달라고 한다면 저 사람 답답하게 일하네란 소리를 들을 것이다. 또는 그럴까봐 걱정을 해야할 것이다.

똑같은 문제로 힘들어 하고 분들은 어딘가에 많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참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일단 쓸데없는 오지랍이라도 줄여보려고 노력해야할 것 같다.

스티븐 코비 나쁜 놈.

Social Games

스마트폰과 페이스북 등과 같이 소위 ‘소셜 네트워크’를 쉽게 구성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되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Social Games.

이러한 게임들은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다음 3가지의 요소로 이루어져있다.

  •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게임에 투입했는가에 따라 주어지는 꾸준한 성장 또는 성과.
  • 게임 내의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장치.
  • 게임 내에서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거나 초대를 했느냐에 따른 추가 보상.

대체로 플레이어의 지혜나 반응속도, 게임에 대한 숙련도 등으로 보상 받는 다른 게임에 대비해 난이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고, 꾸준한 성장 및 성과의 피드백,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는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게임들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도 가지고 있다.

  • 플레이어의 지혜나 반응속도, 게임에 대한 숙련도와 같은 요소, 즉 성취를 위한 과정에 따라 서로 다른 보상이 주어지는 요소가 있다.
  •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가 대입되는 세계관이 있고, 게임의 진행이 대입되는 스토리가 있어, 호기심이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 부여가 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얼마나 세련되어 있는가, 개별 요소가 어느 정도로 배합되어 있는가는 게임 마다 다르다.

아직 Social Game의 역사는 짧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Social Game들에서 이러한 요소가 거의 ‘결여’되어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충분하지 않은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세련된 요소를 추가하는데 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충분히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를 Social Game의 특성 상 낮은 난이도의 필요성과 같은 이유에서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재미’를 파는 시장에서는 사람들은 동일한 방식의 게임에 질릴 수 밖에 없고, 결국 충분한 경쟁이 있다면 좀 더 높은 수준의 요구를 충족시킬 필요성도 생겨나리라 생각한다.

‘Empires & Allies’와 같은 게임을 보면 Social Game도 점차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현재의 수준에서는 ‘재미의 밀도’라는 면에서는 내가 요구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mediocrity was a failure of will, not talent

Whatever failing prompted Cutler to mistreat people, his capacity for blocking out the ordinary distractions of life was his road to excellence. People rarely achieved greatness because they were too blinded by daily routine even to try anything extraordinary. For Cutler mediocrity was a failure of will, not talent.

커틀러가 사람들을 학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를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일상 생활에서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해내는 능력이었다. 사람들이 훌륭한 무언가를 이루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반복되는 일상에 잠식되어,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를 시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커틀러가 생각하기에, 뛰어남에 미치지 못하는 평범함이란, 그저 의지의 부족이지, 재능의 부족이 아니었다.

— quoted from Showstopper!, Pascal G. Zachary

To Admit Ignorance

한 5년 전에 모르는 것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땐 지금보다 모르는 것은 더 많았지만, 실은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에 더 익숙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그 동안 더 많은 글을 읽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지만,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에 더 익숙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모르는 것은 불편하기 이전에 두려운 것이다. 모르는 것은 싸워야 하고 반대해야 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지는 것이고, 남에게 흉을 보이고 약점 잡히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야 말로 용기 있는 일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을 하고 박수를 보내야 마땅한 일이다.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모르는 것은 인간에게는 실로 자연스러운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서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싶을 때, 망설이지 않도록 하는 데 자신감을 북돋아준다. 상상해보라. 나의 옆에 앉아있는 동료는 항상 모든 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얼마나 무시무시하겠는가.

‘모르는 것’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마치 인간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 비유해볼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용기 있는 일이다. 인간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갓난아기나 미친 이에 지나지 않고, 모르는 것을 숨기는 사람은 바보나 겁쟁이에 불과하다.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ss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sst Abraxas. – Demian

Surrender

예전에 강유원 씨가 번역한 달인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을 보면 ‘달인이 되는 다섯 가지 열쇠’ 중 하나로 ‘기꺼이 복종하라’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을 때에는 가르침을 비판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라고 생각하며 읽었고, 그저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라는 지침의 확장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가난뱅이님의 “독서는 어릴 때 하는 거다”란 글을 읽고 ‘기꺼이 복종하라’라는 말이 정말로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반면 토니는 러셀과는 다른 방식으로 합기도에 접근했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이 다른 무술을 배웠다는 것을 드러낼 만한 어떤 움직임, 심지어는 동작조차 취하지 않았다. 과시도 없었고 오히려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이 선생을 존중했다. 그는 조용하고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세심하게 신경 썼다. 사실 이 같은 태도는 무술을 수련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만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 준다. 그는 앉고 서고 걷는 방식만으로도 자신이 달인의 길을 가고 있는 동행자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 달인, 조지 레오나르드 지음, 강유원 옮김, 여름언덕

책에서는 모호한 방식으로 예를 들고 있지만, 이 일례에서 보여 주고자 하는 얘기는, 가난뱅이 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낮추고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배워도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뛰어남을 뽐내지 않는,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낮출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동안의 나의 배움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예전에 어떤 팀에 있을 때, 팀장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새로운 팀장님은 내가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처음에는 그 분을 존경하지 않았다. 호시탐탐 그 분의 오류를 발견하고자 노렸다.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그 분의 기술적인 지식과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드러나게 되었고, 나는 그 분을 존경하게 됨과 동시에, 내가 그 동안 가지고 있지 않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심지어는 그 분을 만나고 있지 않는 현재에도 배우고 있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하나 같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장점을 차차 알게 되고, 내게 없는 그 사람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장점으로 가진 그 분야에서, 그 사람은 나의 스승이 된 것이다.

책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형편없는 책을 읽어도, 그 책에서 뭔가 하나라도 건져 내려는 태도로 읽게 되면, 배우는 것이 있지만, 처음부터 건질 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 책을 읽은 시간은 고스란히 낭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깨닫고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실천할 수 있다.

1. 특정 분야에서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스승을 찾아서 배움을 청한다.

이 얘기는 ‘달인’에서도 언급된 첫 번째 규칙이다. 배움의 시작이자 끝이다.

2. 설령 자신이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다.

어떤 분야에서 설령 스승이 없다고 해도 주위에 스승이 될 만한 책이나 그에 준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스스로나 주변 사람에게 얘기하는 사람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한 사람은 십중팔구 수년 후에는 현재와 똑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3.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존경 받을 수 있도록 하라.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것과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그 사람이 존경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이미 스승으로서의 능력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