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render

예전에 강유원 씨가 번역한 달인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을 보면 ‘달인이 되는 다섯 가지 열쇠’ 중 하나로 ‘기꺼이 복종하라’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을 때에는 가르침을 비판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라고 생각하며 읽었고, 그저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라는 지침의 확장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가난뱅이님의 “독서는 어릴 때 하는 거다”란 글을 읽고 ‘기꺼이 복종하라’라는 말이 정말로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반면 토니는 러셀과는 다른 방식으로 합기도에 접근했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이 다른 무술을 배웠다는 것을 드러낼 만한 어떤 움직임, 심지어는 동작조차 취하지 않았다. 과시도 없었고 오히려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이 선생을 존중했다. 그는 조용하고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세심하게 신경 썼다. 사실 이 같은 태도는 무술을 수련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릴 만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 준다. 그는 앉고 서고 걷는 방식만으로도 자신이 달인의 길을 가고 있는 동행자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 달인, 조지 레오나르드 지음, 강유원 옮김, 여름언덕

책에서는 모호한 방식으로 예를 들고 있지만, 이 일례에서 보여 주고자 하는 얘기는, 가난뱅이 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낮추고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배워도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뛰어남을 뽐내지 않는,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낮출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동안의 나의 배움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예전에 어떤 팀에 있을 때, 팀장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새로운 팀장님은 내가 전혀 모르는 분이었다. 처음에는 그 분을 존경하지 않았다. 호시탐탐 그 분의 오류를 발견하고자 노렸다.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그 분의 기술적인 지식과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드러나게 되었고, 나는 그 분을 존경하게 됨과 동시에, 내가 그 동안 가지고 있지 않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심지어는 그 분을 만나고 있지 않는 현재에도 배우고 있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하나 같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장점을 차차 알게 되고, 내게 없는 그 사람의 장점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장점으로 가진 그 분야에서, 그 사람은 나의 스승이 된 것이다.

책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형편없는 책을 읽어도, 그 책에서 뭔가 하나라도 건져 내려는 태도로 읽게 되면, 배우는 것이 있지만, 처음부터 건질 게 없다고 생각하면, 그 책을 읽은 시간은 고스란히 낭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깨닫고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실천할 수 있다.

1. 특정 분야에서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스승을 찾아서 배움을 청한다.

이 얘기는 ‘달인’에서도 언급된 첫 번째 규칙이다. 배움의 시작이자 끝이다.

2. 설령 자신이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다.

어떤 분야에서 설령 스승이 없다고 해도 주위에 스승이 될 만한 책이나 그에 준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스스로나 주변 사람에게 얘기하는 사람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한 사람은 십중팔구 수년 후에는 현재와 똑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3.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존경 받을 수 있도록 하라.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것과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그 사람이 존경 받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이미 스승으로서의 능력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다.

중립적 시각 Neutral point of view

위키백과:중립적 시각으로부터 인용 (강조는 Joseph Jang):

중립적 시각은 대상에 대하여 서로 충돌하고 있는 확인 가능한 견해들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 공표된 모든 관점을 공정하게 기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어떤 관점도 실제보다 부각·축소되거나 “진실”인 것처럼 기술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만이 아닌, 공표되고 의미있는 여러 관점과 견해들을 독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른 견해들은 깎아내리는 표현을 사용하여 가장 널리 알려졌거나 절충적인 견해가 정확한 것인양 서술되어서는 안됩니다. 독자들의 의견은 독자들 스스로 형성해나가는 것이지 편집자의 편향된 서술을 통해 유도되어서는 안됩니다.

완벽하게 중립적인 시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립적인 시각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Open-minded for IT business

오픈 마인드‘라는 글을 읽고 드는 단상과 반성.

IT 비즈니스의 문제는 주어진 비즈니스 환경, 기술적인 환경 하에서 어떻게 사용자의 요구를 만족시킬 것인가이다. 이러한 문제는 한 인간이 다루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이므로, 역시 너무 쉽게 함정에 빠진다.

따라서, IT 비즈니스에 대한 명제를 세울 때는 다음 사항들을 고려할 것.

  1. 현재를 반영하는가? 현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 되물어 볼 것. 특히, 자신의 의견을 사용자의 의견과 착각하지 말 것.
  2. 변화와 불확실성을 반영하는가? 비즈니스 환경, 기술적인 환경, 사용자의 요구는 빠르게 변화한다. 예측은 길어야 5년. ‘절대’라는 단어가 들어가있다면 뺄 것.
  3. 브랜드, 실적에 따른 후광효과가 명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가? 또는 명제에 근거를 맞추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은 안돼’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IT 비즈니스의 명제는 수많은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그 중에 한가지 씩만 공략해도, ‘안되는’ 이유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한 이유들이 정말 그 비즈니스에 치명적인 것인가, 아니면 사소한 것인가도 확실하지 않다. 후광효과가 영향을 미치기 쉬운 이유도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것은 안돼’는 파괴적인 말이다. 부정적인 의견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이들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소 중의 하나다. 따라서, 정말로 ‘이것은 안돼’ 라고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얘기해야한다면, 위의 세가지 체크리스트를 검토하는 것 외에도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건 어떻게 해야 해’라는 건설적인 의견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블로그 합격 통보 취소 사건

올블로그 서비스를 운영하는 블로그칵테일의 공채 최종 합격 통보를 했다가 번복하는 과정에서, 합격 취소 당사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이러한 내용이 블로그 상에서의 감정싸움으로 번졌습니다. 싸움에 해당하는 글들은 굳이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은 아니므로 링크는 하지 않겠습니다.

올블로그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제가 블로그를 구독하는 분들 중 네 분(강유원, 류한석, 이준영, 허지웅)이나 이 사건에 대해서 언급을 하셨네요.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사건이지만,  채용 프로세스, PR, 기업 문화, 지역주의와 같은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있는 사건입니다.

결국은 싸움의 당사자 중 한 명이자 블로그칵테일의 부사장인 골빈해커님이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하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 거듭되는 올블로그의 PR 실패는 스타트업으로서는 뼈아프군요.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부사장이신 정용민 님이 쓰신, ‘인정 할 때와 안할 때‘와 ‘무조건 사과가 능사는 아니다‘ 라는 글들이 유독 눈에 띄는군요.

네이버 스마트에디터

http://inside.naver.com/smarteditor/

블로거의 마음을 읽은 듯한 기능 리스트. (맞춤법 검사기!) 기능 프리젠테이션의 깔끔함은 어떻고. 네이버는 네이버 무비, 네이버 로컬 정도 빼고는 별로 안쓰지만, 가끔씩 사용자로서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이런 감동은 다른 서비스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NHN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Defining Success

Software Engineering 수업에서 Software Crisis를 언급하면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의 성공율은 극히 낮다는 얘기를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는 언제 성공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DDJ 2007년 10월호의 ‘Defining Success‘라는 글은 소프트웨어 IT 종사자들의 프로젝트의 성공에 관한 관념을 조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조사 중 하나는

  • Shipping when the system is ready is more important than shipping on schedule
  • Providing the best ROI is more important than delivering underbudget
  • Delivering high quality is more important than delivering on time and on budget

라는 설문이었는데, 평균적으로 전자의 대답이 다수를 차지한다.

절대적인 수치보다도 재미있는 사실은, 관리자나 주주들에 비해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의 최전방에 있는 프로젝트 관리자는 전자를 택한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어째서 이런 역설적인 결과가 나올까? 이 글에서는, 그 이유가 조직의 보상 체계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왜 관리자의 결과와 align되어있지않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일반적인 IT 조직 구조 특성상 ROI와 같은 상위 목표는 상급 매니저가 고민하고 미리 결정하기 마련이고, 프로젝트 매니저들에게는 하위 목표인 스케줄과 예산만 주어질 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조직 구조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목표를 그대로 수용하는 프로젝트 관리자보다 ROI, 품질과 스케줄, 예산 사이의 밸런스를 고민하는 프로젝트 관리자가 훌륭한 관리자임은 말할 것도 없다.

Goodbye My Twenties

스무아홉이 되면 서른이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우울해진다는 얘길 선배들로부터 자주 들었는데, 실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 바빠서 그렇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젯밤에 케이블에서 ‘싱글즈‘를 봤다.

며칠 있으면 새해다. 난 서른살이 되기전에 인생의 숙제 둘중 하나는 해결할 줄 알았다. 일에 성공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난 여전히 일에 성공하지 못한 싱글이다. 그럼 어때? 마흔살쯤에는 뭔가 이루어지겠지, 뭐~ 아님 말고. 어쨌든 서른살… 이제 다시 시작이다. 나난~ 화이팅!

‘싱글즈’는 맘에 드는 영화라서 볼 기회가 생길 때마다 끝까지 보게되는데, 나난의 마지막 독백이 어제만큼 마음에 와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무 남짓의 내게 서른살은 무엇이었나 기억이 떠올랐다.

’20대에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알게 될거야. 그리고 서른살이 되면 세상을 바꾸겠어.’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너무 용감한 생각이었다.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알게되기는 커녕, 일과 사랑에 있어서도 뭔가 이루어지거나 해결된 것 하나 없다. 부질없이 시간만 보내다 20대가 끝나버린 느낌이다. 나나 주변의 친구들을 보아도 하나 같이 어설퍼 보인다. 단지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을 뿐인 것 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대신에, 난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많이 부족하지만,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같던 20대 초의 나에 비하면, 지금은 세상에 대해서 훨씬 많이 알고 있다. 난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더이상 다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성공했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넘친다. 가까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있을지도 그릴 수 있다. 술 한잔 하며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인연들도 만났고 헤어졌다. 이성 앞에서 당당해졌고, 더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초연해질 수 있게 되었다. 결혼에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거라는 자신은 있다.

지금 어설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모두들 그런거니까. 지금 어설픈 것은 괜찮다. 모두들 열심히 살아갈거고 언젠가 더이상 어설퍼보이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그리고, 안녕, 나의 20대.

Delegation

기술적인 논의가 항상 최상의 결론을 내리라는 법은 없으며, 차선의 결론 조차도 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모호하고 복잡한 문제가 아닌, 단순한 기술의 사용 여부와 같은 단순한 문제에서도 서로의 논거가 팽팽히 대립하여 논의가 끝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얼굴을 붉히는 이런 상황에서 흔히 사용되는 해결법은 결정권자-책임자의 결정이다. 서로의 논거가 충분히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논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종의 불확실성 즉,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결정권자가 가져가는 이러한 해결법은 일반적으로 옳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결정권자와 비결정권자 사이의 것이였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끝나지 않는 논의의 해결을 위한 결정권자의 결정이 충분히 합리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얼굴을 붉힌 상황에서의 결정권의 행사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결정권자는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할까?

우선,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의견은 흔히,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리스크가 크지 않은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런 경우에 굳이 결정권자의 강제적인 결정을 통해, 상호 불신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필요는 없을 듯하다. 리스크로 인한 1 man-day 손실보다 상호 불신으로 인한 1 man-month의 손실이 클 수 있다는 얘기다.

리스크의 간극이 커서, 결정권자의 의견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면, 그것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굴을 붉힌 상태에서 강제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 폭력적이다. 만약 정말로 결정권자가 옳고, 상대가 충분한 설명에도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일단, 상호 불신의 싹이 트기 시작하면, 모든 상황이 나빠진다. 애초에 단순한 논의가 대립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상호 불신에 근거하고 있다. 논의 주제에 대한 권위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더욱 더 심하다. 서로의 경험과 기술적인 숙련도에 대해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나의 논의에서 나쁜 감정이 배가된 불신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후의 모든 논의에 있어서 서로의 경험과 논거를 믿을 수 없으므로 – 또는 믿으려하지 않으므로, 서로의 의견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심해지면, 경험과 논거를 따지기 전에, 서로의 의도와 감정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가장 심한 것은, 한 배에 탄 다른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상호 불신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반대로, 상호 신뢰란 일의 효율과 성과를 위한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상호 신뢰에서 나오는 가장 바람직한 행위는 바로 위임이다. 위임이란 결정권자가 자신의 결정권을 조금 나누어주는 것이다. 위임이 어려운 이유는 Chaos와 Control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정권자는 Chaos에 이르는 것을 두려워하며, 지식노동자는 Control을 싫어한다. 조직의 특성에 따라 Chaos와 Control 사이의 어느 지점을 선택하느냐가 정해지겠지만, 전통적인 조직들보다 지식노동을 필요로 하는 현대의 조직에서는 좀 더 낮은 Control, 즉 위임이 흔히 강조되곤 한다. 어떤 작은 문제에 있어서는 완벽한 Control이 좀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크게 바라보면, 완벽한 Control을 통해 얻는 조그만 이익은 Control로 인한 손해에 비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결정권자의 강제적인 결정’얘기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Web Search Engine Startups

우리나라에서도 스타트업들의 웹 검색엔진들이 간혹 나오고 있지만, 검색엔진으로서의 기본적인 품질을 만족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것 같다. 블로거스피어를 통해서 잠시 회자된다 하더라도 품질이 뒷받침 되지 않은 유명세는 의미없는 것이다.

검색엔진을 만났을 때 맨처음 해보는 쿼리는 두가지다. 바로 매우 일반적인 표제어에 해당하는 쿼리 – 나의 경우 주로 ‘C++’ – 와 최신성을 반영하는 쿼리 – 오늘 같으면 ‘원더걸스 수능’ 이다. 그리고, 이 간단한 쿼리 두 가지도 무난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색 엔진이 해야할 일들은 너무나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들며, 경험도 많이 필요해서, 스타트업이 웹 검색 엔진을 제대로 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스타트업의 용기를 칭찬하고 북돋아주는 소수의 블로거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용자들은, 웹 검색엔진 스타트업의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보다는, 훨씬 냉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