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작의 영화화
아마, 순전히 어린이용으로 쓰여진 것 외에 내가 처음으로 읽은 SF가 바로 우주 전쟁일 것이다. 아마 어린이용 전집의 첫번째 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접한(그랬다고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SF였던 것 같고, 꽤나 좋아해서 방학 때마다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문어 모양의 거대한 기계는 내 꿈의 주요 소재였다. 그 기계가 서치라이트를 이리 저리 밝히고, 굉음을 내고 걸어다니는 동안, 나는 다리 밑에 숨어있는 내용의 꿈. 난 그 꿈을 자주 꾸었고 즐겼었다. 지금과 같이 극장의 스크린이 나를 대신하여 꿈을 꾸어줄 수 없었던 시절에 말이다.
Half-Life 2가 출시되기 전에 그것에 열광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무래도 인간 저항군을 학살하는 삼발이 기계와 싸울 수 있다는 것 – 내 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등장한 삼발이(Tripod)는 물론 소설의 표지에 나왔단 거랑 모양이 너무 달랐고 두려움의 정도는 기대보다는 덜한 정도였다. 하지만, 삼발이 앞에서의 무력함은 똑같았다. 부두 하역 노동자에 불과한 평범한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자신과 자신의 딸 정도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 무력함의 쾌감이란. (그런 면에서 삼발이 파괴 장면은 오버.)
허무한 결말?
초등학교 이후로는 우주 전쟁을 읽을 일이 없었지만, 내용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결말도 이미 알고있던 터라 내겐 이미 반전도 아니었고, 다코타 패닝양이 처음에 아버지랑 대화하면서 복선을 깔아주는 것도 즐길 수 있었다. 사람들의 결말 논쟁을 보면 대체로 원작에서도 그랬으니 별 문제 없다와 원작과 상관없이 너무 허무하다로 나뉘어진다. SF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종류의 결말은 흔하다. 뭔가를 더이상 제어할 수 없어지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말거나 이고. 그 극복은 인간의 능력보다는 우연성이 개입할 때가 있다. 물론 우연이라고 해도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또 SF의 특성이지만. 영화를 볼 때가 아니라, 원작을 볼 때도 결말에 별다른 이의를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스필버그
스필버그의 공식은 간단해서 좋다. 해체된 가족의 회복. 회복하고 나서는 상처도 없이 말끔하다. 일종의 판타지. 판타지 속의 판타지라.
이미지
수많은 삼발이가 인간을 학살하는 장면과 삼발이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무너지는 광경은 꽤 멋있었다. 피바다도 괜찮았고. 그런 이미지들을 감상하기 위해서 한번 더 보고싶다.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도 국민학교때 도서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결말이 독특해서 아직도 기억이 나는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