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듄 – 파트 2

IMAX 극장 갈만한 시간을 찾다가 차라리 그만한 작품이라면 두번 볼 요량으로, 동네 극장 심야상영을 저렴하게 보고 왔다. 아내가 여행간터라 휴가를 쓴 터라 평일이지만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듄 시리즈가 예지력과 정신훈련, 인간 컴퓨터와 같은 소재를 사용하는 소설이다보니, 원작에는 내적 대사가 상당히 많은데, 이를 드러내기 위해서 내적 대사를 다른 인물이 말하도록 한 장면들이 많이 보였다.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이 대부분일 것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로 인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폴의 의지에 대한 챠니의 입장을 반동으로 설정한 것 같아서 마음에 많이 걸렸다.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한 각색 정도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또한, 1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시카의 영향력이 많이 축소된 점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폴의 여동생 알리아를 대변하는 것 같은 장면은 없었던 것 같은데 줄곧 대변자 정도로만 행동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원작에 대비한 인물들의 중요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세계관과 이어지는 상당히 많은 부분들 – 정치적인 이해 관계와 생존을 위한 프레멘의 문화, 생명의 물에 관련한 요소 – 을 한정된 시간 안에 이토록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듄 1권의 후반에 해당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대단원에 해당하는 전투와 결투, 검투사 시합 등이 들어갔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영화로 만들었을 때도 대중들을 만족시키기 좋은 요소라고 생각했다. 대규모 전투도 멋있는 비주얼의 장비들과 웅장한 음악, 있음직한 전개로 상당히 만족스럽게 그려졌다.

인물들의 모습들에서 의외였던 것 중 하나는 페이트 로타였다. 소설 속에서는 준수한 외모이지만 잔인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하코넨의 주요 인물들과 대중들은 모두 대머리..로 잔인한 성격을 외모에 반영함과 동시에 전체주의적인 하코넨 사회의 모습을 간명하게 그리려고 한 것 같다.

반대 의미로 의외였던 것은 비중이 높아진 이룰란 공주의 복장들이 많은 공을 들인 것처럼 참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듄의 메시아에서는 이룰란 공주의 역할이 좀 더 늘어나는 만큼 후속 작품도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작에서 폴은 자신이 예지하고 선택한 미래에 대해 회의와 책임, 결심을 반복하는데 누구에게도 떠넘길 수 없는 무앗딥만의 고뇌로 그려진다. 그러한 고통 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위안으로 삼는 곳은 챠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챠니와의 사랑이 싹트는 장면에서 폴이 챠니의 다른 이름인 “시하야”를 부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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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셜록 홈즈와 같은 추리소설에서 흔히, 독자들은 사건의 상황과 이를 둘러싼 인물들을 파악하는데에 집중하고 이윽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지라고 생각할 무렵, 탐정은 독자들이 거의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을 법한 사소함으로부터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논리를 통해 결론을 짓는다. 글래스 어니언에서도 ‘세계 최고의 탐정’은 비슷한 일을 해낸다. 하지만 글래스 어니언과 추리소설들과의 차이는 탐정이 근거를 제시하는 것들 중 일부는 시청자들도 이미 함께 봤던 것이라는 점이다. 함께 보고 함께 들었는데도 난 그냥 지나쳤고 탐정은 거기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묘미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전체 이야기에서도 매우 독특한 상황과 역시 독특하고 다양한 인물들, 화려한 장소에 대해서 시청자들이 탐색하고 파악하느라 바쁜 와중에, 이미 사건들은 모두 발생했고, 그조차도 탐정의 계산 하에 있었다는 전개는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를 한껏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탐정은 뻔뻔하게 나의 관할은 사실을 찾아내고 그 정보를 경찰이나 검찰에게 제공하는 것까지라는 말을 반복한다.

한편으로는, 나의 삶에서도, 어떤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나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 빠지지 않고,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한 모습과 사실에 기초한 진정한 이해를 추구할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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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2014)

우연히 한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보게 된 영화입니다. 영화 자체는 편하게 볼 수 있는 보통의 영화지만, 개인적으로는 와닿는 면이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인 칼 캐스퍼가 셰프로 있는 레스토랑에 유명한 요리비평가가 찾아오기로 합니다. “예술가가 되는 건 네 시간에나 해. 여긴 내 레스토랑이야.”라는 레스토랑의 주인에 맞서보지만, 결국 새로운 요리 대신 인기 요리를 만들게 되고 그 때문인지 요리비평가가 다녀간 후에 최악의 평이 실리게 됩니다. 더 나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다시 한번 요리비평가에게 도전을 하지만, 요리비평가가 찾아오는 날 칼 캐스퍼는 주인과 맞서다 레스토랑을 나오게 됩니다. 실직 후 고생을 하다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 끝에 푸드트럭을 통해서 성공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내용 자체는 가벼운 편입니다. 전반부는 유머를 잃지않으면서도 진지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꽤나 흥미로왔는데, 후반부는 이러한 사건의 실타래가 풀리는 과정들이 흥미롭다기 보다는 그저 사건들이 흘러가는 형태인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우선 레스토랑 주인은 예술적인 요리나 이를 통한 개인의 명성보다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는 요리와 이를 찾아주는 고객들을 우선시 합니다. 레스토랑 주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모든 것을 투자하고 고용한 사람들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다루고 싶어하는 것에 크게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칼 캐스퍼는 지금까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아 어느 정도의 명성도 있고 주방에서의 리더 – 셰프로서의 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우연히 더욱 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이를 통해 명성을 얻고 싶어합니다. 요리비평가의 악평이 실린 후 전아내나 레스토랑의 매니저인 몰리는 고집 센 레스토랑 주인 아래에서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요리하기 보다는 푸드트럭을 시도해볼 것을 제안하지만, 칼 캐스퍼는 (아마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자존심 때문에 이를 거절합니다.

푸드트럭을 시작한 후에 칼 캐스퍼는 두가지의 행복을 찾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요리를 자신의 요리를 즐겁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항상 ‘나중’으로 미뤄놨던 아들과 약속한 여행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것.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칼 캐스퍼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인생이 항상 이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겠죠. 푸드트럭을 한다고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모두가 나가서 푸드트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무시하고 계속 일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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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Clayton

마이클 클레이튼(Michael Clayton)의 이야기 자체는 별 볼일이 없다. 사건이 굉장히 급박하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회상 형식의 플롯도 그다지 마음에 안든다. 이 영화의 스릴러물로서의 몰입도는 캐릭터의 내면적인 갈등, 그리고 캐릭터 간의 긴장감있는 대화 장면들에서 오는 것 같다.

U/North의 법무팀장인 카렌 크로더는, 마이클 클레이튼(또는 아서 이든스)의 적인 동시에, 어느 쪽도 회사나 개인의 이익과 진실 혹은 정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는 면에서 동일한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두 캐릭터 간의 차이점은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삼성 특검과 같은 상황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도 똑같은 갈등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영화에서와 같이 진실의 은폐나 도덕적인 부패가 과연 개인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질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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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신부 Tim Burton's Corpse Bride



Corpse Bride, originally uploaded by Joseph Jang.

“유령”신부는 Corpse Bride의 무난한 번역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시체나 해골 캐릭터들이 돌아다니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약간의 혼란을 느끼게된다. “시체”신부라는 어감과는 다르게, 달빛 아래에서 우아하게 걷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체”의 세계의 것은 아니었다.

빅터의 결혼식을 알리는 도입부에서 그려지는 지상 세계는 단조롭고 칙칙한 모습인 반면에, 유령신부(이름을 알게되는게 상당히 뒤쪽이어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건 의도적인 걸까?)가 살아있을 때의 과거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에서 보이는 지하세계의 모습은 활기가 넘치고 화려한 모습이다. 각각의 세계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을 제외한 지상 세계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부와 명예, 종교를 중요시 하는 캐릭터들임에 반해서, 지하 세계의 캐릭터들은 쾌활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다. 빅터가 빅토리아를 포기하고 유령신부와 결혼할 것을 약속하는 대목에서도 관객들은 (적어도 나는) 그것에 커다란 이의를 달지 않을 만큼이나 지하 세계는 지상 세계에 비해서 오히려 매력적이다. 마치, 팀 버튼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몽땅 “지하 세계”라는 기호에 대입시켜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대니 엘프먼의 음악도 마음에 들었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유령신부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메인 테마를 연주하는 빅터의 피아노 솔로나, 빅터와 유령신부가 함께하는 피아노 듀엣도 참 마음에 들었다. 피아노 듀엣을 마친 후에, 유령신부가 “Pardon my enthusiasm.”이라고 하는 걸 들으면서 유령신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그러고보면, 난 enthusiastic한 여자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여자를 만났을 때 단조롭고 열정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물론, 내 판단 하에서) 어떤 감정도 싹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스토리는 비교적 무난한 편이다. 결혼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이기도 할 것 같고, 그냥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에도 잘 맞아 떨어지는 그런 평이한 이야기인 것 같다. 왜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는 것 있지 않나. 주인공이 이루려고 하는 목표가 좌절되고, 방해자와 조력자가 나타나고, 주인공은 갈등하고 고통받고, 마침내 마지막 장애물을 넘어서고 목표를 달성하는 이야기.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웃기려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재치있는 대사를 가끔씩 던져주는 스타일이었는데, 아무도 웃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영화관에 가는 목적 중 하나인 “같이 웃기”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어서 약간 아쉬웠다.

이 영화를 본 곳은 대전 프리머스 4관이었는데, 음악이 고조될 때 약간 귀가 아플 정도였다. 단순히 음량이 큰 이유만도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뭔가 이상했다. 재미있게 본 영화, 특히 음악이 좋은 영화는 크레딧을 봐주고 나오는게 일반적인데, 저번에 스타식스 타임월드에서 나가란 소리 들은
이후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 대전에서 영화볼 때는 크레딧 지키기에 상당히 소심해졌다. 그래서, 적당히 사람들이 모두 나간 후에, 옆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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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

복수 삼부작의 완결편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를 본 사람이라면 복수 삼부작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해보는 건 당연하다. 알다시피 친절한 금자씨는 그 삼부작의 완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세개의 작품을 늘어놓고 보면, 얘기하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스펙트럼이 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이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적인 이야기 방식이었다면, "올드 보이"로 오면 이미지와 상징을 통한 이야기를 한다. "친절한 금자씨"는 한층 더 강렬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상징을 표현하려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이미지들이 많이 등장하다보니 전작들보다 좀 더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

전작들을 본 사람들이라면, 전작들에 출연한 배우와 대사를 알아보는 것도 작은 재미.

박찬욱은 최고의 감독?

대사, 의상, 화면 구성, 음악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최고였다. 한국에 이만한 감각을 가진 감독이 몇이나 있을까.

심각한 분위기에서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박찬욱 감독의 단골 기법은 너무 능수능란해서 식상할 정도였다.

완벽한 복수자 캐릭터 금자씨

13년 동안의 복수 계획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다. 이러한 과정 자체를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겠지만, 아무래도 복수의 절정은 그야말로 복수의 대상을 극한의 고통에 빠뜨리는 그 순간이다. 금자씨의 복수는? 역시 완벽하다. 금자씨가 직접 백 선생에게 주는 물리적인 고통은 극히 일부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백 선생은 극한의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복수자 아닌가.

하지만, 플롯상에서 금자씨의 복수 계획은 너무 일찍 노출되고, 복수의 형태 자체가 그렇게 참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수의 세세한 표현이 크게 충격적이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긴 시간을 할당한 것은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전작들에서의 고어한 표현들에 대한 관객들의 비판들이 박찬욱 감독에게도 영향을 미친걸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이영애

영화가 시작했을 때만해도 과연 이영애가 복수자의 캐릭터로 어울릴까 약간 의심하고 있었는데. 영화를 볼 수록 나긋나긋하고 조근조근한 목소리에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얼굴을 가진 이영애가 아니었다면 과연 누가 저 역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란색 죄수복의 이영애, 물방울 무늬의 원피스와 썬글래스 차림의 이영애, 잠옷 차림의 이영애, 가죽 코트 차림과 붉은색 아이섀도우의 이영애 모두 예뻤다. 그녀는 너무 예뻐서, 화면 한 구석에 이영애가 서 있기만 해도 화면 전체가 예뻐 보일 지경이었다.

복수에 관하여? 인간 군상에 관하여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영화는 백 선생(최민식 분)은 어느 누구도 감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란 것을 보여준다. (식탁에서의 섹스 장면은 억지스러울 정도?) 이것은 금자씨가 무슨 형태로 복수를 하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보장해준다. 물론, 죄책감의 주체는 관객이다. 박찬욱 감독은 우리들을 양심의 우리에서 풀어준 후에, 자 어떻게 할꺼냐 하고 물어본달까. 금자씨로부터 복수를 의뢰받은(?) 평범한 모습의 부모들은 어쩌면 관객들 자신을 대입시키기 좋으라고 등장시킨 분들 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막을 내릴 즈음 눈이 오는 장면에서, 제니는 입을 벌리면서 하얀색 (두부 모양의) 케익을 먹고 하얗게 된 혀를 보여준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근식이 보통의 혀를 보여준다. 피로 만든(?) 케익을 먹은 금자씨는 당연히 붉게 물든 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은가 싶더니,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그녀의 혀를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 같은 색깔의 혀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그렇게 여러가지 색깔의 혀를 가진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때로 그 중에는 자신의 혀를 내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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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소설 원작의 영화화

아마, 순전히 어린이용으로 쓰여진 것 외에 내가 처음으로 읽은 SF가 바로 우주 전쟁일 것이다. 아마 어린이용 전집의 첫번째 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접한(그랬다고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SF였던 것 같고, 꽤나 좋아해서 방학 때마다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문어 모양의 거대한 기계는 내 꿈의 주요 소재였다. 그 기계가 서치라이트를 이리 저리 밝히고, 굉음을 내고 걸어다니는 동안, 나는 다리 밑에 숨어있는 내용의 꿈. 난 그 꿈을 자주 꾸었고 즐겼었다. 지금과 같이 극장의 스크린이 나를 대신하여 꿈을 꾸어줄 수 없었던 시절에 말이다.

Half-Life 2가 출시되기 전에 그것에 열광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무래도 인간 저항군을 학살하는 삼발이 기계와 싸울 수 있다는 것 – 내 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등장한 삼발이(Tripod)는 물론 소설의 표지에 나왔단 거랑 모양이 너무 달랐고 두려움의 정도는 기대보다는 덜한 정도였다. 하지만, 삼발이 앞에서의 무력함은 똑같았다. 부두 하역 노동자에 불과한 평범한 소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자신과 자신의 딸 정도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 무력함의 쾌감이란. (그런 면에서 삼발이 파괴 장면은 오버.)

허무한 결말?

초등학교 이후로는 우주 전쟁을 읽을 일이 없었지만, 내용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결말도 이미 알고있던 터라 내겐 이미 반전도 아니었고, 다코타 패닝양이 처음에 아버지랑 대화하면서 복선을 깔아주는 것도 즐길 수 있었다. 사람들의 결말 논쟁을 보면 대체로 원작에서도 그랬으니 별 문제 없다와 원작과 상관없이 너무 허무하다로 나뉘어진다. SF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종류의 결말은 흔하다. 뭔가를 더이상 제어할 수 없어지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말거나 이고. 그 극복은 인간의 능력보다는 우연성이 개입할 때가 있다. 물론 우연이라고 해도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또 SF의 특성이지만. 영화를 볼 때가 아니라, 원작을 볼 때도 결말에 별다른 이의를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스필버그

스필버그의 공식은 간단해서 좋다. 해체된 가족의 회복. 회복하고 나서는 상처도 없이 말끔하다. 일종의 판타지. 판타지 속의 판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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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삼발이가 인간을 학살하는 장면과 삼발이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무너지는 광경은 꽤 멋있었다. 피바다도 괜찮았고. 그런 이미지들을 감상하기 위해서 한번 더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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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Batman Begins (2005)

영웅의 성장기

스파이더맨처럼 배트맨 비긴즈도 영웅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다. 스파이더맨은 영화 내에서 힘을 가지고도 개인적인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성격(A)으로부터 그 힘을 공공을 위해 봉사하는 성격(B)으로 변화한다. 무려 여자친구도 버리고 말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한 이러한 성격의 변화가 바로 스파이더맨에 나타나는 성장 플롯의 일부다. 스파이더맨 복장이나 여자친구와의 관계같은 부수적인 변화는 아무래도 좋다. 정신적인 면에서의 성장은 A->B의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성장 플롯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영웅들의 본 스토리는 아무래도 선악의 대결 구도이지 않는가. 사실, 스파이더맨의 성공은 이런 선악 대결 구도에 지루해하기 시작한 관객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배트맨 비긴즈도 스파이더맨을 본받아 성장 얘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그런데 문제는 배트맨 비긴즈가 좀 멀리 갔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어린 배트맨 – 브루스 웨인은 부모님의 피살 당시 무력함에 죄의식을 가진다(A). 청년 브루스 웨인은 모든 범죄자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복수를 시도한다(B). 고담 시티의 갱 두목 팔코니를 찾아갔다가 ‘넌 우리 세계를 몰라’하고 핀잔을 받은 웨인은 범죄자 집단으로 숨어들어서 그들의 생리를 배운다(C). 듀커드(리암 니슨)와 라스 알굴을 만난 웨인은 무술과 함께 범죄자에 대한 그들의 생각 또한 전수받는다(D). (듀커드의 대사를 듣고 이것들이 이제 대놓고 맛가는구나하고 생각했었다. 헐리우드의 기본 사상을 잠시 망각했었던 것.) 하지만, 웨인은 무술들만 쏙 배우고 나서는 그들의 생각을 거부하고 고담시티를 구하기 위한 영웅으로 귀환한다(E). 이 후는? 스파이더맨과 똑같다.

배트맨의 성격은 A->B->C->D->E의 복잡한 변화를 거친다. 상당히 복잡한 캐릭터다. 배트맨 비긴즈가 다른 영웅 성장기와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과연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을 정도니까. 이유는? 물론 관객들은 복잡한 걸 싫어하니까.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관객들의 수준이 좀 높아졌다는 걸 의미하는걸까? 아니면 제작사를 설득할 수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역량인가?

배트맨은 아메리칸 닌자

역시 미국인들에게 ‘동양’의 국적은 죄다 일본인가보다. 티벳 고원(?)을 배경으로한 닌자 훈련이라. 원래부터 배트맨은 표창과 줄타기 등의 닌자 기술을 사용하는 영웅이긴 하다. 라스 알굴 일당이 국제 조직이다보니 무술이나 언어, 본거지도 국제화되어 있다고 억지로 봐주는 것도 가능하긴 할 것 같다.

리암 니슨이 듀커드로 나올 때는 “음, 제다이 마스터가 여기에. 그럼 배트맨은 마스터를 배신하고 다크 사이드에 넘어간 파다완?”이라고 생각했다. 제다이도 역시 사무라이와 도제 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리암 니슨을 배트맨의 스승으로 캐스팅한 것은 묘한 어울림이 있다.

크리스찬 베일

크리스찬 베일은 역대 배트맨 중 가장 예쁜 배트맨이다. 여피의 이미지가 재산가 브루스 웨인이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수없이 갈등을 하는 캐릭터에도 예쁜 남자가 어울린다. (예쁜 것에 모든 합리화의 초점을.) 처음으로 크리스찬 베일을 영화를 통해서 본 것은 아메리칸 싸이코였다. 손도끼를 든 여피족. 섹스를 하는 자신의 몸을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그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퀄리브리움은 개인적으로 좀 별로였고. 머시니스트도 괜찮다고 하던데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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