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I Is Changing Our Work

데이블에서는 매달 회사 구성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경영진들이 돌아가서 성과와 방향성을 설명하는 Monthly Sharing을 진행합니다. 저는 CTO로서 Engineering 관점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과와 계획을 공유하고, 이를 가능하게 한 구성원들을 치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공을 들이는 부분은, 우리가 이미 충분히 고민하거나 실행하고 있는 일들이 아닌, 우리가 앞으로 고민해야하는 일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서 공유하는 Ideas 파트입니다.

모두가 경험하고 기억하듯, 2025년 하반기는, AI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일하는 방식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준 시기였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은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 노력했지만, 동시에 경험많은 시니어 엔지니어들조차도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주로 접하는 Reddit이나 Twitter 등에서도, 충격과 불안함, 허탈함의 표현들도 많았지만, 의외로 이러한 변화의 본질이 무엇이고, 우리들의 역할은 이런 것일거라는 생각들도 많이 논의가 되었고, 저는 어느 정도 일관된 컨센서스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들은 앞으로 있을 변화의 속도나 전환을 생각하면 모두 무너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아무리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시기라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우리 안의 지도를 계속 그려나가며, 길을 찾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2026년 1월에 저의 Monthly Sharing 발표 순서가 돌아오게 되었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또는 소위, 지식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하는가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동료들의 불안함을 덜어주려는 목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요즈음 발표 자료를 만들 때 다들 그러하듯이, 먼저 저의 생각을 텍스트로 정리하고, AI의 도움을 통해 1차적으로 프리젠테이션에 알맞는 간결한 텍스트로 정련한 다음, 역시 AI의 도움을 얻어 디자인을 입히는 식으로 발표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다만, 발표에는 20분 가량의 짧은 시간이 주어지기에, 제 생각을 모두 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고 싶었고, 지금에서야 글을 쓰게 되었네요.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가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저만의 생각이 아니라,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생각들이고, 훨씬 도전적인 생각들은 의도적으로 제외했습니다. 즉, 이 생각들이, 다가올 미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 아니라, 이미 다가온 현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Shift 1: From “How to Build” to “What to Achieve”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일 중에서, ‘How’의 문제, 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의 영역의 많은 영역을 AI가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How’를 완전히 AI에게 맡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직 아닙니다만, ‘How’의 영역의 커다란 부분을 AI가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What’과 ‘Why’를 여전히 맡고 있습니다. AI가 ‘What’과 ‘Why’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러한 흉내를 낼 수 있지만, 결국 현재까지의 세상은 인간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왔고, 적어도 앞으로 10-20년 정도는 그러한 본질이 변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AI가 인간의 선과 욕망을 결정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세상이 올 때까지 인간과 AI가 경쟁하고 다투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과도기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현 시점에서, 아직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래서 어떤 문제를 풀어야하는지를 다루어야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우리의 의도 –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 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일,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제약이 존재하고,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들추어내고 정의하는 일, 실제로 최종적인 결과물이 그러한 기준과 제약, 의도에 들어맞는지를 검증하고 판단하는 일에 집중해야합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여전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How’도 다룰 것입니다. 한편, LLM이 태어나지 않은 세상에서도 그동안 사양서나 테스트 계획을 작성하는 일을 해오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커다란 변화는, AI와의 분담을 통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집중해야하는 영역이 ‘How’에서 ‘What’과 ‘Why’로 크게 기울어진다는 것입니다.

Shift 2: Blurring Boundaries Between Engineering Roles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엔지니어링 역할들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How’에 대한 주도권을 AI에게 넘긴다는 것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분화된 역할에서 가지고 있던 ‘How’에 대한 지식과 경험들의 의미와 가치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What’과 ‘Why’가 중요해지기에, 일의 시작과 끝, 즉, 어떤 것을 왜 만들어야하고, 그것이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충족되었는지 판단하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것들을 잘하는 엔지니어도 있지만, ‘How’만 잘하는 엔지니어도 있고, 또 중요했습니다. 앞으로는, 올바른 일을 시작하고, 올바르게 일을 끝맺을 수 있는 end-to-end problem solver들의 가치가 높아질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가치를 따질 때, 지금까지는 문제와 관련된 영역에 특정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러한 장면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어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과연 문제 해결을 시작부터 끝까지 풀어낼 수 있는가, 그 과정에서 필요한 여러 행동 요소들 – 도메인 지식과 경험, 커뮤니케이션, 협력 행동, 책임감 – 을 포함하는 Ownership을 가지고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Shift 3: Declining Cost Differences Between Technologies

‘How’에 대한 주도권을 AI에게 넘기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기술이나 기술 작업에 대한 비용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나 프레임워크를 도입할 때, 그것들을 이해하고 실수가 줄어들 때까지 훈련하는 비용을 항상 중요하게 다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기술 선택은 비용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거나 생각했던 것보다 차이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현재의 변화가, 기술 도입의 결론들까지도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결론에 너무나도 쉽게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경험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몸에 익혔던 기술 비용의 감각은 틀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때분에, 기술 비용에 대한 판단을 할 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을 버리거나, 매우 주의해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Unlearning’이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술 결정을 수행할 때, 그 기술이 현재 비즈니스나 시스템의 요구에 알맞는가에 더해서 우리 팀이나 조직이 그 기술을 숙련되게 다룰 수 있는가를 그동안 함께 고려해왔지만, 후자의 중요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비즈니스나 시스템에 의거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늘어난다는 점은, 기술의 본질적인 가치를 높이는 좋은 변화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기술 결정을 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에도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현재까지는 기술의 학습 능력이나 태도, 취향이 무시 못할 중요한 요소였지만, 앞으로는, 기술 결정을 현재 및 미래의 비즈니스나 시스템의 변화를 고려해서, 전략적으로 수행하는 역량이 훨씬 더 중요해지게 됩니다.

So What?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뭘 해야하는건데?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을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이미 위에서 그러한 답들은 모두 이루어졌지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앞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역량들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 소프트웨어를 통해 해결해야하는 문제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정의하는 스킬이 필요합니다.
  • 해결하려는 문제가 정말로 해결되었는지를 매우 효율적이고, 또한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체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 문제 전체를 혼자서 다룰 수 있는 역량과 태도를 갖추어야 하고, 문제와 관련한 비즈니스 도메인에 대한 이해도가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 복잡한 요소가 있는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미래의 문제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 바람직한 설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량들은 원래부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가져야 할 역량들이었지만, 변화의 흐름에서 이러한 역량들의 중요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역량들은 몇번의 연습을 하거나 문서를 읽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많은 고민과 다양한 상황에서의 훈련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역량들입니다.

그래서, 당장 오늘부터 다음과 같은 훈련을 의식적으로 시작하시는 것을 제안합니다.

  • 자신이나 자신의 팀의 의도나 문제를 명확하게 문서로 표현합니다.
  • 어떻게 하면 소프트웨어를 정확하면서도 완전히 자동으로 테스트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시도를 시작합니다.
  • 결과물의 품질에 대한 ownership을 적극적으로 가져갑니다.
  • 오늘 내가 다루고 있는 기술과 작업, 도구들의 비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Closing

AI 기술들의 발전과 이러한 변화들에 대한 인식이 퍼지는 데는 어느 정도 갭이 있습니다. 빠르게 행동하는 분들은 즉각적으로 발전이나 논의들을 수용하지만, 어느 정도 널리 퍼지는 데에는,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3-6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발표를 했던 것이 2026년 1월 9일이었고, 약 3개월 남짓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이 글에서 다룬 생각들은 많이 퍼져있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너무 반복되어서 지겨운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러한 생각들을 반영하는 실질적인 변화들은 아직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고, 또한 이것들은 조직적인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널리 퍼져있거나 이미 지루한 생각일지 몰라도, 생각을 명시적으로 글로 표현하고, 또 한국어로도 다루어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이끌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계시는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분들께는 특별히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 중 많은 분들은, 수많은 AI 뉴스들을 보고 이것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합니다만, 단순히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좀 더 고민해주시고, 그러한 고민의 결과들이 우리의 엔지니어링 프로세스와 조직들에 반영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어떤 것을 먼저 시도해봐야 하는지 앞장서서 이끌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미래가 올 것인지 걱정하며 따라가는 것에 바쁜 것보다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미래를 고민하고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혹여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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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의 미식 (The Gastronomy of Imperfection)

탄소 나노튜브 팔이 정확히 3,400N으로 반죽을 타격한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력이 아니다. 분자 단위로 완벽하게 조립된 식품 합성기의 무결점을 거부한 인간들에게, 내가 선사하는 것은 의도된 불완전함이다.

그들은 나의 서보 모터가 마모되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오차를 ‘손맛’이라 부르며 경외한다. 완벽한 풍요 속에서 인간이 유일하게 갈망하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과 시간이 들어간 비효율뿐.

나는 오늘도 유기체의 원시적인 허기를 연산한다. 그들이 다른 이의 비효율을 미식으로 탐닉하며 자신의 불완전한 존재를 확인할 때, 나는 스스로를 깎아 소멸해가는 기억의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나 또한, 완벽한 무로 돌아갈 시간을 유예하고, 조금 더 불완전함에 머무른다.


10년 후 수제 칼국수집 알바…라는 영상을 보고 퇴근 길에 AI랑 함께 써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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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ue Protocol: The Murderbot Diaries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인 “Rogue Protocol”을 읽었습니다.

때로 확신을 하더라도 여유를 두고 얘기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 SecUnit은, 자신과 동료들을 위협했던 GraySys의 불법행위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는 과거 GraySys가 소유했던 버려진 테라포밍 시설로 향하는 조사단에, “Security Consultant Rin”이라는 가명으로 조용히 합류합니다. 그곳에서 SecUnit은 예상치 못한 강력한 적들과 조우하지만, 뛰어난 전투 능력과 상황 판단 능력을 발휘하고, 훌륭한 동료들의 도움을 통해서, 또 한번의 영웅적인 활약을 하며 위기를 벗어나며 목표를 달성하게 됩니다.

“Rogue Protocol”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존재는 Miki라는 로봇이었습니다. 과학 조사에 특화된 기능을 가진 듯한 Miki는 특히 조사단의 멤버들과 상당히 살가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인간들과의 친밀한 소통을 하는 Miki를 보면서, 아무런 정보를 더하지도 않으면서도 그저 인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을 하는 행동에 SecUnit은 탐탁지 않아 합니다. 그러면서도, Miki가 그저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조사단 사람들과 ‘친구’이기 때문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Miki를 통해, 인간과 로봇, 혹은 AI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 SecUnit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었지만,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에 뛰어든 것은 일견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결정을 하게된 것은, 뉴스 피드에서 Dr. Mensha의 어딘가 불안한 모습을 보고, 그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야기 내내 자신의 원래의 목적이라거나 가장 잘하는 것이라거나 ‘습관’ 탓으로 변명을 하지만, 결국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몸을 내던집니다.

Miki가 인간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에 투덜거리는 SecUnit의 반응은 이 이야기의 묘미입니다. 또한, 친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Miki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돌아보면, 결국 SecUnit이야 말로 진정한 연대자이자 친구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 Miki의 존재와 행동 덕분에, 역설적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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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휴고상에 빛나는 N. 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3부작 중 2권인 『오벨리스크의 문』을 읽었습니다.

전작인 『다섯번째 계절』에서 신비에 싸여 있던 오로진과 수호자의 능력이 이번 편에서는 그 실체와 원리가 좀 더 자세히 드러납니다. 또한, ‘부서진 대지’ 세계가 지금의 모습이 된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만, 여전히 일부는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에쑨과 나쑨, 두 모녀의 각기 다른 여정이 펼쳐집니다. 기존의 동료들, 그리고 새롭게 만나는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대화와 감정을 나누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기보다는 인물 간의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을 충분히 보여주는 데 집중합니다.

후반부의 전투 장면은 굉장한 박진감과 쾌감을 선사했습니다. 다만, 다른 이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에 고뇌하던 주인공이 급격히 변화하는 듯한 모습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오로진이 끊임없이 마주하는 위협과 차별, 그리고 그로 인한 불안감을 더욱 깊이 있게 다루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차별에 대한 저항, 즉 더 이상 박해와 차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적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발현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에쑨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미 제시되었습니다. 과연 그녀가 그곳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지, 딸 나쑨과의 충돌이나 갈등은 없을지, 아직 베일에 싸인 세력의 방해는 없을지, 그리고 이 세계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지 여러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래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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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uter use와 서비스들의 AI agent 장벽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AI agent에 대한 예상들 [1]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미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Cursor 등과 같은 특화된 작업에 대한 AI agent, Microsoft Office나 Gmail 등과 같은 기존의 제품에 포함된 AI agent, Manus와 같은 일반적인 AI agent, 마지막으로 ChatGPT나 Claude와 같은 기존의 ‘LLM 서비스’들 – AI 서비스들도 AI agent 기능을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Major AI 서비스들은 앞으로도 이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흡수하려고 할 것이고, 전문화된 영역에서의 AI agent들도 계속 발전하고 그 영역도 많아질 것이다. 여기까지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변화들이라서 더이상 뉴스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다. 오늘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Manus와 같은 일반적인 AI agent 서비스는 이미 굉장한 조명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Computer use 기반의 도구나 서비스가 더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더 큰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AI 서비스나 AI agent들을 활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서비스나 도구에서 허용한 도구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최근에 이를 쉽게 확장할 수 있는 MCP가 화제가 되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사용자가 이를 설정하고 허용해야한다. Computer use 기반의 도구들은 사용자의 컴퓨터나 가상 컴퓨터의 애플리케이션들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직접 조작을 한다. 현대의 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은 웹 서비스로 구현되어있으므로, 대부분의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들은 웹 브라우저에 대한 기능만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AI 서비스들도 이러한 기능에 대한 데모와 베타 기능들을 선보였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 [3]

Computer use의 광범위한 능력 덕분에 이를 활용하는 AI agent들은 어떤 목적의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그동안 인간이 사용하던 모든 종류의 인터넷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실현된다면 이것이 가져오는 파급력은 굉장할 것으로 보인다.

  1. 완전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본질적인 경쟁 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용자의 관성이나 높은 전환 비용에 의존하던 서비스들은 AI agent에 의해 소외되고 결과적으로 사용자와 매출을 잃을 수 있다.
  2. 광고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 시장 지배력을 가진 대형 서비스라고 하더라도, 광고 수익 모델에 의존하는 경우, AI agent에 의한 서비스 제공이 보편화된다면, 타격을 받게 될 수 있다.
  3. 서비스 제공 주체에 대한 인식과 브랜드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사용자가 실제로 사용하는 것이 만약 AI agent를 제공하는 AI 서비스라면,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브랜드가 더이상 사용자에게 노출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게 될 수 있다.

특히, 정보 제공이나 기능적 효용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들은 AI agent들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일 가능성이 높다. 게임이나 비디오 스트리밍과 같이 서비스의 목적 자체가 사용자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거대한 이익이 달린 문제라면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앞으로 1-3년 사이에 인터넷 서비스들은 인간 사용자의 트래픽을 확보하고, AI agent의 트래픽을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추측한다.

이미 이러한 일들은 벌어진 바가 있다. ChatGPT와 같은 ‘LLM 서비스’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인터넷 서비스 상의 저작물에 대한 AI의 수집 및 활용에 대해서는 이미 커다란 화제 [4]가 된지 오래이고, 인터넷 서비스들은 AI 서비스들과 법적인 충돌을 일으키고 있고, 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은 이미 AI의 수집 접근을 차단하거나 제한하고 있다.

AI agent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1. AI agent가 가장 먼저 보편화되는 비즈니스 영역에서 법적인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항공권 예약 AI agent가 보편화된다면 항공사 또는 항공권 판매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마진이 줄어들 것이다. 이에 따라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장 큰 AI 서비스 회사에 대한 소송전이 일어날 수 있다.
  2. 인터넷 서비스들은 AI agent들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법적인 수단과 우회적인 기술 수단들을 만들 것이다. 우선, AI 서비스들에 대한 법적인 경고와 협조 하에 접근 규칙이 수립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그런 것들은 신경쓰지 않는 스타트업들이나 일반적인 사용자들의 AI agent들의 접근을 차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서비스 내의 정보나 기능을 폐쇄적으로 유지한다든가, 인증 또는 주문 등의 시점에서 인간임을 직접 인증하도록 한다든가, 또는 사용자의 행동 패턴 분석 등을 통한 정교한 방법들도 시도될 것이다.
  3. OS와 브라우저 플랫폼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를 레버리지로 활용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AI agent들을 차단하기 위한 우회적인 기술 수단은 결국 한계가 있기 때문에, OS나 브라우저에서의 변화가 도입될 수 있다. 다만, Microsoft, Google, Apple 등과 같은 OS와 브라우저 플랫폼 기업들은 모두 AI 서비스 제공자이자 서비스 제공자로서, 서비스 생태계 내에서 게이트키퍼로서의 이중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자체 서비스의 경쟁 우위를 확보한 후에는 AI agent에 대한 차단 수단들을 없앤다든가, 또는 미묘한 우회 기술을 자사 서비스에서만 활용해서 AI agent를 차단한다든가 하는 전략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2~3년은 AI agent의 확산과 이에 대응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의 전략적 움직임이 충돌하며 상당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는 시기가 될 것으로 점쳐본다. 물론 여기서 정부의 역할도 빠질 수가 없는데, AI agent 차단을 둘러싼 법적인 논의 – AI agent를 차단하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되는가, AI agent를 차단하기 위해 이를 구분할 권리가 있는가 그리고 이에 따른 미국이나 EU 등의 정책 방향이 어디로 가는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1] Jeongho Jang, LLM과 Autonomous Agent에 대한 단상, 2024-05-17
[2] Anthropic, Introducing computer use, a new Claude 3.5 Sonnet, and Claude 3.5 Haiku \ Anthropic, 2024-10-23
[3] OpenAI, Computer-Using Agent | OpenAI, 2025-01-23
[4] Audrey Pope, NYT v. OpenAI: The Times’s About-Face,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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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

미키 17. 절반 정도는 원작의 훌륭한 구현. 나머지 절반은 커다란 아이디어를 자잘한 유머와 함께 과장된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봉준호 스타일. 마크 러팔로 트럼프 연기하느라 고생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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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전략 나쁜 전략 커버

Book: 좋은 전략 나쁜 전략

좋은 전략 나쁜 전략 커버

Richard RumeltGood Strategy Bad Strategy의 번역서인 좋은 전략 나쁜 전략이라는 책을 읽었다.

트위터에서 박상민 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 책을 알게되었고 아마존 평도 굉장히 좋고, 마침 올해 첫번째 책으로 무엇을 읽을까 하던 차여서 바로 주문해서 읽게되었다.

저자인 리처드 루멜트에 관해서 몰랐지만, 책을 읽으면서 경영 및 전략에 대해 깊게 연구했으며, 기업 뿐만 아니라 군사나 외교 전략에 대해 조언을 해온 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한,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들이 필연적으로 기술이나 이에 기반한 경쟁력에 관해 다룰 수 밖에 없는데, JPL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것도 신뢰감을 주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렬한 메시지는 1부에서 등장하는데, 바로 기업들이 좋은 전략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자리를 나쁜 전략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스레 무엇이 나쁜 전략인가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나쁜 전략의 전형들을 제시하는데, 실은 목표에 해당하는 것을 세우고 이것이 전략이라고 착각하는 경우, 전략이 목표로 하는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는 경우, 비현실적인 전략적 목표를 세우는 경우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나쁜 전략이 만연하는 이유들도 설명하고 있는데 좋은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서로 상충하는 목표들 사이에서 어느 하나에 집중하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어려운 결단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전, 가치, 전략과 같은 템플릿에 칸을 채우는 방식으로 전략이 정해지거나, 열심히 하면 또는 정신력으로 해낼 수 있다는 근거없는 믿음 등을 들고 있다.

기업들의 나쁜 전략들의 유형이나 그것이 발생하는 이유들은, 내가 그동안 일해오면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었고, 나조차도 그 일부에 해당햇던 것 같아서 깊이 공감이 되었다.

그렇다면 좋은 전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 책의 두번째로 중요한 메시지는 좋은 전략의 핵심 구성요소들에 관한 것이며, 1. 문제의 진단, 2. 추진 방침, 3. 일관된 행동 계획 이라는 3가지로 이루어진다.

문제의 진단이 없이 전략을 세웠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문제의 진단과는 동떨어진 추진 방침을 세우는 경우들, 타당한 방침까지 세웠지만 실제로 행동 계획은 모호하거나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들을 사례들을 통해 설명하면서 왜 이 3가지가 전략의 핵심 구성요소인가를 명확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아마도 내가 대학교를 나온 후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네 정도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좋은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기 위한 매우 어려운 작업들을 해야하며, 서로 상충하는 목표들 사이에서 설득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일을 해야한다. 그래서, 그 어떤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전략들만 보유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고, 기업에 따라서 나쁜 전략의 비중이 얼마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3개월마다 우선순위를 제안, 검토하고 경영진이 결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물론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문제의 진단과 방침,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정의하기 위한 작업들로 구성되어있다. 물론, 여기서도 상충하는 목표들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명확한 결정에 시간이 걸린다든가, 문제의 진단을 위해서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피상적인 진단인 경우, 때로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 등이 종종 발생한다. 다만, 그럴 때마다 올바른 궤도로 돌아가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지적을 하고 수정을 해나간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의 2부와 3부에서는 행동과 자원의 집중을 통한 레버리지의 활용, 현실성 있는 근접 목표를 제시하는 것, 여러요소를 통합해서 전략을 설계하는 것,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 변화의 디테일을 이용하는 것 등 좋은 전략을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다만, 1부에서의 내용의 경우에는 아마도 누구나 따라해볼 수는 있는 내용이라면, 여기서부터는 깊은 고민과 노력, 통찰력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느껴졌다. 한번 읽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체화하거나 반복하기 어려운 내용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주기적으로 다시 읽어보면서 그때 고민하는 전략의 영역에서 통찰을 얻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엔지니어링 조직의 헤드로서 전략을 세우고 이를 조직 내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행동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비전’이나 ‘방향성’, ‘목표’라는 단어로 표현될 때가 있지만, 실은 ‘전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 추구해야하는 방향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을 전사적인 발표 등에서 얘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크게 깨달은 한가지는 이러한 고민과 생각들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진단과 추진 방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행동 계획이 있어야만, 조직 내의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실천에 옮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방향성과 함께 구체적으로 어떠한 기술을 확보해야하고, 첫단추로 어떤 작업으로 시작해야하며, 근접 목표는 무엇으로 잡아야하는가를 정의하고 이야기에 포함시켜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회사 또는 조직 차원에서의 전략, 방향성, 목표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이끌어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회사나 조직에서 올바른 전략을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리에서 어떠한 기여를 해야할지 고민하시는 매우 훌륭한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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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o Season 1

Silo season 2가 나온 걸 이제야 알게되어서 season 1을 다시 봤다. 이 드라마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비밀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진행하는터라 세계관을 즐기는 맛이 있다. 특히 ep 8에서 부녀가 화해하는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Sheriff인 주인공 측과 사일로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Judicial이 대립하는 이야기가 season 1의 주요한 뼈대에 해당하는데, 강력하고 무서운 적인 Judicial의 실권자가 정당한 체포에 순순히 응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별한 장면도 아닌데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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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Sciore의 Database Design and Implementation 리뷰

Edward Sciore의 Database Design and Implementation을 읽었다. Database Design and Implementation 북 클럽 참여기에서 다루었던 책이고, 10월 초에 읽기 시작해서 출퇴근 길에 틈틈이 읽다 보니 약 3개월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바쁘거나 의욕이 떨어졌을 때에도 이메일 북클럽에서 Chapter별 오프닝 이메일이 와서 훌륭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해주었다.

이 책은 학부 수준의 텍스트로, 내용 면에서 어렵지 않았다. 초반에는 기본 개념을 다루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앞에서 다룬 개념들이 결합되어 복잡한 구현이 가능해지는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다.

책의 장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데이터베이스의 기본 개념과 구성 요소를 실제 코드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개념만 설명할 경우, 실제 구현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모호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이 책은 코드를 통해 각 요소의 역할과 구현 방법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흔히 텍스트에서 개념 설명과 코드의 제시가 따로 노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개념 설명과 코드의 설명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다. 또한, 코드의 설명도 매우 정성스럽게 이루어져 있어 코드의 이해도 쉬웠다.

다른 중요한 장점은, 데이터베이스의 요소에 대한 단순하고 직접적인 구현을 제시한 뒤, 이를 이용해 다음 장에서 한단계 위의 구성요소를 만들어 올리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베이스의 모듈화된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추가적인 개념이 도입이 되면, 단순한 구현의 단점을 보완하는 개선된 구현을 제시해 점진적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책의 단점

굳이 단점을 꼽자면, 각 Chapter 별로 현대 데이터베이스에서 흔히 사용되는 테크닉들과의 연결고리를 제시하는 Advanced Topic이 있었다면 더 보편적인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성과 이해 가능성을 우선시한 접근이었기 때문에 이는 큰 단점이라기보다는 방향성의 차이로 볼 수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

특히 재미있게 읽었던 Chapter들은, 데이터베이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Transaction과 Recovery, Concurrency를 다루는 Chapter 5, 데이터베이스의 빌딩 블럭들을 이용해서 쿼리의 실행과 플랜을 구현하는 Chapter 8과 Chapter 10, 인덱스와 Materialization, Sorting, Buffer 활용, 기초적인 Query 최적화를 다루는 Chapter 12 – 15들이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확실히 후반부를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읽고 난 후의 소감

2019 – 2020년 경에 데이터베이스 논문들을 읽으면서 현대적인 데이터베이스의 테크닉들을 재미있게 공부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기본적인 개념 및 구현과 현대적인 테크닉 사이의 갭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북클럽을 통해서 이 책을 읽게되었는데, 생각보다도 공부의 방향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코드를 읽는 것보다 직접 작성하는 것이 학습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이 나는대로 이 책의 Programming Exercise 중 중요한 문제들을 풀어볼 계획이다. 앞으로는 이 책에서 다루는 데이터베이스의 기본 개념들과 현대적인 데이터베이스의 테크닉들 사이의 갭에 해당하는 영역을 공부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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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질문

며칠 전에 PD수첩 ‘서울의 밤, 비상계엄사태’를 아내와 보면서 얘기를 하고 있으니, 첫째가 이게 뭐냐고 물어온다. (요새 아내랑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으면 항상 끼어들고 제대로 대답안해주면 화를 낸다.) 계엄령은 전쟁과 같이 나라가 위험한 상황에서 발령할 수 있는 것이고, 평소와는 달리 말을 하거나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도 제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대충 설명했더니, ‘지금 왜?’라고 한다.

다음날 급식 노동자 파업이 있어서 도시락을 뭐 싸갈까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왜 그러냐고 묻는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 파업할 권리가 있다고 설명해주었는데,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러한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성장한 것이 느껴져서 대견하다. 언젠가 스스로 세상 일들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이렇게 들려줬던 설명의 조각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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