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사회

Lord of Light by Roger Joseph Zelazny
 
어떤 새로운 행성에 정착한 인간들이 과학 기술을 독점하고, 그 1세대가 스스로 인도 신화의 신이 되어 후손들을 지배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진보된 과학 기술을 후손들에게 온전한 형태로 전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촉진주의자와 자연 상태에서 진보를 시켜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신들의 투쟁을 그린다.
 
이러한 사전 지식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지루할 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기엔 신들간의 애증이나 영웅의 이야기를 다루는 고전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을 감안하면서 읽는다면, 꽤나 즐거운 유희일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소설의 형태로 나온 작품이 이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도로 발달된 유전공학기술이나 무기를 신화적인 초능력에 투사한 것이나, 1세대간의 관계나 ‘상’의 이전을 신들간의 애증과 변신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깔끔하다.
 
읽는 당시에는 매우 즐거웠으나, 읽고 나서 약간 불만스러운 것은, 기대한만큼 문학적으로도 세련되지 못한 듯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번역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신들의 사회’의 명성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점은 SF 소설을 읽을 때,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B급 SF와 최고의 SF를 갈라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과학 기술에 대한 고찰과 함께 현실적인 눈으로 특정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문학 일반의 성취를 이루는 것. (그렇다고 신들의 사회가 B급 SF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1세대가 독점하는 과학기술은 일종의 권력이다. (이것 조차도 과학 기술에 대한 특정한 의견이다!)
1세대인 많은 신들조차도 과학 기술의 소비자이며 뛰어난 과학/기술자인 ‘야마’에게 의존한다.
이러한 과학 기술 – 권력을 대중들에게 분배하기를 원하는 ‘촉진주의자’들은 (촉진주의자가 아닌) 1세대들에게 제1의 배격대상이다. 권력의 분배라는 일반적인 형태로 본다면, 이러한 문제는 인류의 역사 이래로 계속 반복되고 제기되어온 매우 일반적인 문제인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젤라즈니는 이 소설에서는 과학기술의 소비자가 될 대중들도 양편으로 나뉘어 싸우지만, ‘촉진주의자’들이 퍼뜨린 과학기술로 말미암아 점진적으로 ‘신’들의 힘은 약해지고 실질적으로 ‘촉진주의’의 승리를 선언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플롯은 젤라즈니가 작품을 쓸 무렵 만연해 있었을 냉전시대의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실제로 젤라즈니가 자신의 현실에의 은유를 의도했든 아니했든 젤라즈니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과학기술 – 권력의 분배에 관한 것이며 독자들이 이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인도 신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인도 신화(힌두교?)에 나오는 많은 신들이 등장하며, 불교를 퍼뜨리는 1세대인 싯다르타 태자도 등장하지만, 그들의 속성이라든가 변신, 불교에 관련한 교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무해 제대로 즐기기가 힘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공부해보고 싶다.
(인도 신화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지는 몰라도 조만간 조셉 캠벨의 ‘신의 가면’을 읽을 예정)
 
그 외에, 신들간의 애증관계가 이 소설의 주요 plot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인간의 원형을 그리고 있는 신화에서도 그런 것처럼, 이것은 상당히 유치하다. (원래 사랑 놀음이라는게 그러한 특성을 가짐으로써 자신을 정의하지 않겠냐만은)
 
이른바 ‘젤라즈니의 최고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신들의 사회’는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SF들 중에서도 다섯손가락 중 하나로 꼽아줄 만 하다. (어떤 사람들은 ‘최고’가 아닌 것에 화낼 지도)
단편들이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만큼이나 상당히 만족감을 주는 젤라즈니를 좋은 번역서를 통해 또 만나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신들의 사회”에 대한 2개의 생각

  1. ㅋㅋ 저도 형꺼 앰버 연대기 보고 뿅 간 이후 신들의사회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사서 봤어요. 더 이상 번역되어서 나온게(살 수 있는게) 없어서 우울해요.. ㅎㅎ

  2. 안녕하세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야말로 A급 SF더군요. 젤라즈니도 좋아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SF라고 친구들에게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작품이 번역되어 나와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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