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by Lauren Slater
때는 바야흐르, 무더운 2005년 8월, 서울의 한 고시원에 기거하며 현장실습을 하던 때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고시원으로 돌아가면, TV를 보는 것 외에 낙이 없었고, 그래서 내겐 아주 가벼운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서점의 인문서적 코너에서 빈둥대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놀이고, 주기적으로 해주는 놀이다. 그날 따라 눈에 띈 것이 이 책이었고, 아마도, ‘엽기 살인 사건에 대해서 신고 조차도 하지 않았던 38명의 증인들’에 얘기하는 끔찍한 장면이 재미있게 느껴졌던 탓에 이 책을 사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이렇게 가벼운 내용의 교양 과학서는 사기적인 내용이 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데, 저자가 그래도 심리학자라는 것은 내용에 대한 나의 신뢰를 높혀주었고, 정말로 믿을만 하든 아니든, 읽는 행위 자체를 좀 더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저자는 책에 실린 심리실험들은 어느 정도 독자의 관심을 끌만한 (다시 말해 선정적인?) 것들을 의도적으로 선정한 것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실제로 상당히 1) 유명하거나, 2) 직관적이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실험들을 다루고 있어서, 상당히 재미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38명의 방관자에 대한 얘기 외에도 상당히 충격적인 것은 원숭이 새끼에게 철사 인형 엄마를 던져준 것이 아예 엄마가 없는 것보다는 원숭이 새끼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는 것이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육아법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가능한 한 엄마가 응석을 받아주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고 하고, 이러한 실험이 당시의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 즉, 어머니가 안아주고 포옹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으로 – 얘기를 하고 있다.
또, 인상적인 것 하나는 실험 자체가 상당히 비윤리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함으로써, 동시대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지만, 나중에 그 실험 결과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윤리적인 면에서 많은 논란이 되어 진행하지 못하던 여러가지 과학적 연구들도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온 여러 사례가 있을 것 같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례들을 바탕으로 과학윤리와 과학발전의 대결에 관한 연구가 과학사 분야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일 것 같다.
저자는 이러한 심리실험들에 대한 소개 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의 학문적인 의견 또는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한 의견도 얘기하고 있고, 과학자의 개인적인 삶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것들이 책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긴 하지만, 저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학문적인 평가로 연장하는 무리를 범하기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