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과 규칙에 대한 보상과 벌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조직에서 어떤 부정적인 행동들이 관찰될 때 매니저로서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은 규칙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경우 가장 마지막에 고려해야 하는 방법이다.
‘9시 – 6시를 근무시간으로 한다’라는 규칙을 가진 회사를 가정해보자.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 늘 그렇듯이 9시보다 늦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정시에 회사에 도착하려고 지하철역에서 뛰어왔지만 1분 늦어버린 사람, 그래도 아침에 맛있는 커피는 필수니까라고 생각하며 카페에 들르다보니 9시 10분에 도착한 사람, 어젯밤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새벽까지 회포를 풀다보니 늦잠을 자버려 10시가 좀 지나서 출근한 사람.
약 20%의 사람들이 한달간 1번 이상 9시 정시 출근을 지키지 않았다. 반대로 정시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20% (전체의 16%)는 늦게 출근하는 사람들로 인해 업무에 방해가 되거나 또는 불공평함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조금 보수적인 회사의 인사부서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 9시 정시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주는 방법을 고려하다가 그 해의 인사고과에 정시 출근 여부를 반영하기로 했다. 또한, 한달 동안 시스템에 기록된 출근 시간 중에서 9시 이후인 시간이 한 번 이상 있다면 인사부서에서 매니저와 본인을 대상으로 규칙 위반을 통지하고 이는 인사고과에 반영될 것이라는 이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정시 출근을 지키지 않던 그룹이었던 20%의 80% (전체 중 16%)가 정시 출근을 지키기 시작했다. 다만, 규칙을 지키기 시작한 20%-80% 중에서 다시 80% (전체 중 약 13%)는 다시 규칙을 지키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규칙에 대해 불만이 생겨났다. 살다보면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사고와 실수로 인해 10분 늦는 것에 대해 너무 과도한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아침마다 반드시 등교를 돕고 빠듯한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해 출근을 하는데도 이러한 불이익은 너무 가혹하다는 논리를 폈다. 반대로, 그래도 정시 출근을 지키지 않던 그룹이었던 20%의 20% (전체 중 4%)의 출근 지연 시간은 평균 10분에서 평균 20분대로 더 늦어졌다. 어차피 불이익을 볼거라면 별 차이가 없지 않냐는 논리였다. 한편, 정시출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은 해소되었지만, 정시출근을 원래부터 지키던 80% 그룹 내에서도 20%의 사람들은 자신이 혹시라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발생하는 불이익에 대해 스트레스를 느꼈고 그것이 불만으로 이어졌다.
여러가지 경로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들은 인사부서는 규칙을 조금 개선하기로 했다. 10분 지각까지는 경고를 하되 한달간 3회 누적이 되면 원래 대로의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다시 규칙을 지키기 시작한 그룹 중에서 80%는 실수로 인한 위험이 줄어들어 어느 정도 만족을 했지만, 그 중 20%는 불만이었다. 그 이유는 다양했는데, 여전히 오는 경고 이메일은 두렵다는 것, 10분 이상의 지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 3회 누적 시 불이익은 여전히 너무 강한 불이익이라는 것 등이었다. 정시 출근을 원래부터 지키던 80% 그룹 내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불만이 줄어들었다고 대답했지만 여전히 그들 머리 속에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었다.
임원진으로부터 너무 불이익을 주는 방법만 생각하지말고 정시 출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방법도 생각해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인사부서는 또 고민을 하게 되었다. 3년 동안 정시 출근을 빠짐없이 한 직원들을 개근 표창하고 보너스 2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어차피 정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에 3년 개근을 달성하는 것은 약 64%가 달성할 것으로 기대되는,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보너스 액수도 적을 수 밖에 없었다. 64%나 받는 표창이기에 어떤 뿌듯함 같은 것은 없었다. 어차피 정시 출근을 지키지 않던 그룹은 이 액수를 보고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반대로 정시 출근을 하던 그룹의 사람들에 대해서 지각을 할 것 같으면 휴가를 사용하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돌았다.
‘9시 출근’이라는 어떤 회사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어떤 규칙을 사례로, 어떤 규칙을 지키도록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그런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 이야기 식으로 풀어보았다. 어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규칙을 더 많은 사람들을 지키도록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당근과 채찍을 동원하고, 규칙 그 자체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과 채찍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 당근에 대한 효과와 공정성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발생한다.
사실 우리들이 모든 일에 대해서 규칙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가를 잘 생각해보면, 실은 어떤 긍정적인 행동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정당한지를 설명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하고 싶은 것이 대부분이다. 더 좋은 단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통 ‘규칙’ 대신 ‘가이드라인’이라는 단어를 쓴다. 가이드라인이라면, 일부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방식의 행동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는 길을 열어놓아야 할 때도 있다.
물론, 규칙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같거나 비슷한 행동을 할 때 발생하는 시너지가 있다. 하지만, 규칙이라고 해도 여전히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발생할 것이다. 처음에 규칙이 만들어질 때는 모두의 합의에 기초를 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늘어나면 규칙이 유명무실해 지므로, 일정 비율 이하로 유지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을 보상과 벌을 이용해 제어하려는 생각도 가급적이면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을 규칙으로 제어하려고 하면 위에서 본 것처럼 규칙을 만드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 모두가 그 규칙에 얽매여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한다. 규칙에 대해 많은 제어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고려들이 필요한 것 같다.
- 먼저,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지키기 힘든 규칙이어서는 안된다.
- 가능하다면 규칙의 설계 상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실수는 어느 정도 허용해야 한다.
- 규칙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작은 위반들은 그냥 눈감아주되 정상적인 상태로 올 수 있도록 가벼운 자극을 주는 것이 좋다.
- 규칙의 목적에 반하는 매우 커다란 위반들에 대해서도 규칙을 만들지 말고 하나의 예외로서 처리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방식으로 규칙을 만들 때 나는 ‘정책’이라는 단어를 쓴다. ‘정책’은 조직을 운영해나가려는 의도를 통해서 조직의 방향을 제시해 사람들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고,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포용하면서 논의를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는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나도 처음 매니저 역할을 경험하면서 명확한 규칙과 엄정한 실행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기에, 새롭게 매니저 역할을 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아침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봤다.
결국은 더 많은 규칙이 더 효과적인 조직을 만들어주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