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목적
연애의 목적은? 신문 가판대를 지나치며 보듯 인터넷에서 슬쩍 컨닝한 정답은, 연애의 목적이란 것은 바로 연애다. 하지만, 작가나 감독의 의도가 어쨌든 간에 나로서는 영화만 보고서 연애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파악이 되질 않는다. 그저 유림(박해일)과 홍(강혜정)의 캐릭터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불성실한 관객이랄까. 유물론자인 내가 생각하는 연애의 목적이란 연애에 참여하는 인간들이 서로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익 때문이다. 물론 그 이익이란 당사자들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사회적/정서적/경제적/성적 이익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또 여러가지가 될 수도 있다. (결혼에 관한 나의 글을 참고해보라.) 연애의 목적이 연애란 것도 선천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연애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선천적/구조적 경향을 유도한 원인이 되는 어떤 이익으로 환원해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솔직함 vs. 의뭉스러움
유림이라는 캐릭터의 최대 매력은 아무래도 섹스라는 연애의 목적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한 10년 전쯤에 비해서야 지금은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도 섹스라는 단어를 꺼림찍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유림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유림이 솔직함의 극단이라면, 홍은 그 반대다. 홍은 계속 유림의 요구를 거절하면서도 슬쩍슬쩍 들어주는 의뭉스러움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표현은 마지막 그 순간까지 미룬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가장 이상적인 연애의 관계가 이런 관계가 아닐까 싶다. 솔직한 두 사람의 연애는 쉽게 지루해지기 마련이고, 의뭉스러운 두 사람의 연애는 아예 제대로 시작하기도 힘들지 않을까. 솔직함 또는 의뭉스러움만으로 연애라는 관계가 지속되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 연애는 신뢰게임이다. 연애가 지속되어서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된다면? 왜, 그래서 사랑의 무덤이 바로 결혼이 아니겠는가.
여자의 "No"는 "Yes"?
요즘 세상에 좀 아는 체 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얘길 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핀잔을 받게 마련이겠지만, 이 영화는 당당하게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정녕 남성들의 판타지가 아니었단 말인가. 남성 감독의 필터링을 당하긴 했지만, 여성 작가의 작품이란 점에서 그렇게 보기는 좀 힘들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연애에 가장 능통한 친구 녀석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연애는 항상 "case-by-case"라고. 마음에 드는 남정네가 여관가자고 하면 여자의 No도 Yes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눈 맞으면 뭔 짓을 못하겠는가.
솔직히 수학여행 때 섹스 장면은 멋도 모르는 관객이 보기엔 완전히 강간이었다. 단, 이어지는 홍의 친절한 고백이 없었다면 말이다. 물론, 유림은 분명히 홍이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것을 어떤 감각으로 느꼈을 것이다. 관객은 다만 감독에 의해서 그러한 감각이 차단당했을 뿐. 아니면, 감독에 비해 관객들이 둔감한거라거나.
복수는 나의 것, 새로운 희망
연애의 목적은 그 관계가 주는 이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익의 경쟁력이 사라지면 바로 그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홍은 그러한 케이스의 전형적인 희생자였고, 영화의 시간대에서는 다시 유림이 그 희생자가 된다. 신기하게도 남자가 그런 순애보의 희생물이 되는 상황이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것이 내게는 상당히 낯설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순애보의 희생물로 당해온 여자들의 복수극이라고 보면 오버일까. 두차례의 복수극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그리고 이제는 달라진 두 사람의 관계 위에서, 연애는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