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열독하는 가난뱅이 님의 블로그 글에서 인용:
사실 독일군의 강점은 무기나 지휘관의 전술전략보다는 각 제대단위에서의 전술적 역량이 더 컸었다. 즉 일일이 다음행동에 대해 구체적인 명령을 내려보내야 했던 다른 연합군의 제대와는 달리, 독일군은 일정한 전술적 목표만 제시되고 나면 그 다음의 행동에 대해서는 지휘관의 재량을 인정했다. <중략> 그래서 실제 전장에서 독일군의 각 제대는 상급부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현지 상황에 맞는 전술적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럼으로써 특히 경험많은 하사관들의 역량이 개별전투에서 극대화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임무형 지휘체계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거다. 당장 사단에서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을 때 그 명령 안에서 제대로 재량권을 발휘하려면 먼저 그 명령을 이해해야 한다. <중략> 바로 여기서 빛을 발한 것이 프로이센 시절부터 계몽주의를 내면화하여 발전해 온 독일의 국민교육이었다.
독일군의 임무형 지휘체계는 현대의 경영(management) 또는 리더십(leadership)에서 얘기하는 위임(empowerment)이라는 것이다. 독일군의 위임이 제대 단위에서 하사관들에게 이루어졌다면, 현대에는 지식 노동자 수준까지 적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의 국민 교육이 독일군의 임무형 지휘체계를 가능하게 하는데에 기여했다는 것은, 위임이 가능하기 위해서도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가난뱅이 님도 말씀하셨듯이 임무형 지휘체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명령을 이해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전술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능력, 전투 경험으로부터 전술적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능력, 상황과 전술적 지식에 기반해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전술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과 같은 능력이 필요하다.
지식 노동의 위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위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위임의 대상이 되는 업무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합리성과 같은 기본적인 역량(competency)들이 전제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었다고 해도, 누구에게나 어떤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더라도서 위임이 동작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처음 들어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에게 당신은 어떤 일을 위임할 것인가? 아마도 처음에는 최소한의 지식과 경험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를 맡겨, 책임과 권한을 최소화할 것이다. 위임을 위해서 어떤 업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할 때는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역량에 따라 위임의 정도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역량에 따른 위임에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업무에 비해 낮은 역량을 가진 사람에게 너무 커다란 책임과 권한을 맡긴다면, 실질적으로 그 사람은 주어진 책임과 권한을 충족시킬 기회도 적을 것이고, 실패할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높은 역량을 가진 사람에게 너무 작은 책임과 권한을 맡긴다면, 그는 재미를 느끼지도 못할 것이고 성장하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다. 어느 경우라도 개인과 팀에 모두 나쁜 영향을 주고, 실질적으로 위임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위임에 있어서 역량은 전제에 불과하고, 동기 부여의 정도나 일의 재미, 교육의 기회, 공동체 의식과 같은 요소들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량에 따른 위임에 실패한다면 다른 요소들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결국은 위임 자체를 실패하게 만들 수 있다.
역량에 따른 위임은 다시 역량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평가의 문제는 그 자체로 어려운 문제라서 더 이상 언급하진 않겠지만, 전에 언급한 신뢰의 문제와 어느 정도의 연관성도 보이는 것 같다. 즉, 신뢰의 정도는 실질적인 역량과 대조되는, 인식되는 역량에 영향을 미친다. 너무 신뢰하거나, 신뢰하지 않는 상황은 실질적인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눈을 가리는 가리개와 같은 것이다.
재미있는것을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