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이후의 출근
2월 중순 이후로 4개월 가까운 재택 근무 끝에 지난 월요일에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도쿄도에서는 확진자 재생산 수가 2에 육박해서 경보 (이른바, 도쿄 앨러트)가 발령된 상태였지만, 긴급 사태 선언 해제 이후로 대부분의 백화점, 음식점, 상가들은 문을 연 상태. 통근 인파를 피해서 11시 쯤 집을 나섰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보기 힘들 정도. 매일 아침 들르던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 테이크아웃.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어느 층을 눌러야할지 고민했었다. 엔지니어들이 대부분인 내가 일하는 층에서는 대략 10% – 20% 정도 인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내 책상에 가니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어서 먼저 먼지를 닦아내는 일부터 했다. 맥북은 자동 업데이트 때문에 각종 업데이트 알림 등이 떠 있는 상태. 내 맥북에서 회의록 위키 페이지를 주기적으로 자동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cron 작업이 동작하지 않고 있었나보다.
오피스라고 해도 어차피 회의실에서 물리적인 회의를 하는 것도 아직 허용되지 않는 상태다. 평소처럼 개발 작업을 진행했는데, 느낀 점은 출근한 사람 수가 적고 조용해서 집중이 잘 된다는 점. 평소 때도 우리 오피스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통로쪽 자리다보니 집중에 방해되는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역시 통근 인파를 피해서 오후 4시 반 정도에 오피스를 나와서 혼자 자주 가던 교자 가게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다른 가게들처럼 들어가면서 손 소독제로 손을 소독해야하고, 카운터 석 사이사이에 투명 플라스틱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거리에 인파도 여느 때 수준처럼 느껴졌다.
오후 6시에 한국 오피스와의 회의가 있었기에 서둘러 집에 돌아왔는데 땀이 많이 나서 샤워부터 해야했다. 출근할 때는 N95 마스크를 쓰고 갔는데, 너무 더워서 퇴근할 때는 만약을 위해 가져간 Surgical mask를 쓰고 돌아왔다. 그나마 전철은 너무 붐비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에 이어서 릴리즈 작업 등을 하다가 9시 즈음에 리모트 근무를 마쳤다. 오피스 근무와 리모트 근무를 합쳐서 대략 7시간 반 근무를 한 셈.
오랜만의 출근 후 느낀 점을 적어보자면,
- 일본 사회는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 거리를 걷거나 외식을 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 통근 인파를 피해서 출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또다시 같은 성격의 리모트 근무를 해야한다면 출퇴근 시간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시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충돌을 해결하는 등의 높은 수준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해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오피스 근무를 해야할 이유가 굉장히 적은 것 같다. 오히려 쥬니어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진척이나 작업의 방향성을 기꺼이 옆에서 살펴봐주고 사소한 것들도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동료들이 없으면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서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성향의 엔지니어라면 아마 큰 문제는 겪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COVID-19는 쥬니어 엔지니어의 커리어 성장에 가해지는 제약조건이자 자극점으로서 기능하게 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엔지니어링 조직은 오랜 기간 동안 리모트 근무를 하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엔지니어링 도구, 엔지니어링 프로세스 나아가서는 엔지니어링 문화까지 세심하게 다듬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COVID-19 사태에 따른 장기간 리모트 근무에도 커다란 불편함은 발생하지 않지 않았나 싶기는 하다.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오픈 소스 개발 문화가 항상 그 모델의 중심에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COVID-19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더욱 더 그런 모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