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의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2005년 7월 27일 강정구 교수는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컬럼을 실었다. 이 컬럼의 내용은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두 집단의 충돌이 폭력과 이념 분쟁으로 일관하는 당시의 상황을 비판하고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나름대로 합리적인 주장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맥아더가 분단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전쟁의 주도자이며, 전시 민간인 학살의 주범이라는 근거를 들어, 맥아더가 생명의 은인이라거나 은혜를 갚아야한다는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을 읽기 전에 강정구 교수의 컬럼 원문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이에 대한 보수언론과 보수단체의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조선일보의 사설 강 교수는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품에 안기라에서는 강정구 교수가 적화통일을 옹호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27일 ‘6.25전쟁은 통일전쟁이자 內戰내전이었다’며 ‘이 집안싸움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것이고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親盧친노 인터넷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전쟁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한 400만명 대부분에게 미국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며 ‘전쟁狂광 맥아더의 동상도 함께 역사 속으로 던져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01년 8-15 행사 때 북한의 김일성 生家생가 만경대를 방문해 방명록에 ‘만경대정신 계승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는 글을 남겼던 사람이다. 강 교수의 글 속엔 6-25전쟁에서 北북이 승리해 ‘赤化적화통일’이 성사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감정이 절절이 배 나온다.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씨의 컬럼 ‘강정구 발언’이 의미하는 것에서는 한술 더 떠서 강정구 교수를 북의 지령을 받은 공작원 정도로 취급한다.
북(北)의 김정일 정권은 이제 대남(對南)전선에서 어떤 자신감을 얻은 듯 하다. 최근 한국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맥아더동상 철거운동과 동국대 강정구씨의 ‘통일전쟁’ 운운의 발언은 건국 이래 한국의 반공(反共)에 눌려 지하(地下)에 머물렀던 NL세력이 마침내 지상(地上)으로 표출하는 신호탄을 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다?
보수언론과 보수단체가 특히 비판하는 부분은 6.25전쟁이 통일전쟁이었다는 대목이다. ‘통일전쟁’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모호하다. 통일을 결과로 하는 전쟁을 의미하는가,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을 의미하는가. 하지만, 그 단어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그들이 부여하는 의미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통일전쟁에 담겨진 2차적인 의미는 ‘통일을 할만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주체에 의한 통일을 결과 또는 목적으로 하는 전쟁’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아마도 강교수는 의도하지 않았을, 이렇게 쓸데없이 복잡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적어도 합리적인 논쟁을 위한 태도는 아니다. 솔직히, 이념 논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생각없이 그 단어만 사용하더라도 그들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강교수가 의도한 그 단어의 진짜 의미가 무엇이든, 강교수의 얘기가 옳은가의 여부의 판단은 학자들에게 맡기고, 이른바 ‘통일전쟁’에 대한 보수진영의 태도를 살펴보자.
우선, 진중권의 창과 방패에 올라온 진중권 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via 프레시안)
"한국 역사상 통일을 위해서 전쟁을 결심했던 사람으로 두 김씨가 있으니 김유신과 김일성이다."
6.25가 김유신의 삼국통일에 비견할 만한 통일전쟁이라는 얘기죠? 이 말은 누가 했을까요? 정답은, 월간조선 조갑제 전 사장입니다. 의 말입니다. 대표적 우익인사인 이 분은 김일성도 한 통일전쟁의 결심을, 왜 대한민국은 하지 못하냐고 질타하더군요. 이렇게 6.25가 통일전쟁이었다는 주장도, 조갑제씨처럼 전쟁을 선동하는 맥락에서 하면 괜찮고, 강정구씨처럼 역사학적 주장으로 제기하면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 그게 국보법이 지배하는 이상한 나라의 논리입니다.
진중권 씨가 언급한 월간조선 1994년 3월호 조갑제 씨의 논평 외에도 월간조선 2000년 6월호에 실린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의 시론에도 비슷한 얘기가 실려있다.
6-25는 우선 金日成의 통일전쟁이었다
한국 쪽에는 대응火器조차 없는 T34 전차를 앞세워,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시키는 미니 전격전을 벌일 만큼 그 준비는 좋았다. 그러나 金日成은 미국의 개입을 예상치 못했고, 그 미국은 중공의 개입을 예상치 못했다. 전쟁은 밑에다 불칼을 단 롤러로 남북 3000리를 1년 남짓한 사이에 한두 번 아래위로 밀어대는 기동전이었고, 휴전 얘기가 나오고서부터 2년간은 전선이 38선 주변에 교착된, 주로 陣地戰(진지전)이었다.
2001년 9월 28일 건군 53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 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도 비슷한 논지의 얘기를 했다가, 한나라당의 공격을 받은바 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세 번의 통일 시도가 있었습니다. 신라의 통일과 고려의 통일, 이 두 번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인 6.25 사변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번 모두가 무력에 의한 통일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네 번째의 통일 시도는 결코 무력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야합니다. 지금은 남북이 엄청난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의 안전을 위해서나 장래의 번영을 위해서나 반드시 평화통일에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이 연설에 관한 중앙일보의 기사.
이에 대해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엄연히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에 의한 남침(南侵)을 ‘통일시도’ 로 평가하다니 대통령의 사상과 역사인식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고 비난했다. 權대변인은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영령들과 참전용사들이 공산주의자들의 ‘통일시도’ 를 막은 ‘반통일세력’ 이란 말인가" 라며 "金대통령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한 데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총무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발언"이라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강력히 따질 것" 이라고 말했다. (from 중앙일보)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화성인의 침공이라도 있었는가?
국가보안법에 의한 강정구 교수 사법처리
조선일보가 강정구 교수를 조선일보 입사시험에 낙방한 루저로 모는 찌질이짓을 하는 가운데, 경찰당국은 강정구 교수를 국가보안법으로 사법처리 방침을 발표했다.
급기야 보수 세력의 반발은 행동으로 나타났다. 자유개척청년단 등 23개 보수 시민단체 회원 820명이 최근 "강 교수의 글은 북한을 찬양-고무해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고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내란을 선동한 것"이라며 서울중앙지검과 서울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한 것.
고발장을 접수한 수사당국이 강 교수의 글 중 관심을 갖는 대목은 "6.25 전쟁은 후삼국 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이 모두 삼한 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 했듯이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 부분이다.
수사 당국이 이 대목을 특별히 주목한 것은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수사 당국인 서울경찰청은 지난 24일 사법처리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조사 초점은 국가보안법 7조(고무-찬양) 위반 여부"라고 밝혔다. (from 프레시안)
6.25가 통일전쟁이라는 말 중에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강정구 교수의 모든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정구 교수의 논리는 그 논리가 반박됨으로써 힘을 잃은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들은 그 논리를 얘기한 사람, 바로 강정구 교수라는 사람 자체를 반박함으로써 그의 논리도 힘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 맥아더 동상 철거에 관한 합리적인 논의를 시작해보자고 했던 글이 보수언론에 의해 조그만 꼬투리를 잡혀서 국가보안법의 도마에까지 아직도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Update 2005/10/16: 강정구 교수에 대한 비판에 대한 강정구 교수의 반박